2011.04.19. 경향신문 <특별기고> / 쓰지 신이치 메이지학원대학 교수·환경운동가
(정리, 한겨레신문 최희진 기자)

▲ 쓰지 신이치 교수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몇주간은 집중하고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이 일이 나를 더욱 용기있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리라 희망한다. 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사태를 좀더 명확하게 보고 있다.

3·11 이후 일본이 경험한 것은 X선과 유사하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X선 검사를 받았고 속살이 들여다보이게 됐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약간의 침묵과 애도할 시간, 기도, 경외심이다. 죽은 자들에 대해 묵상하고, 틱낫한이 최근 일본에 보낸 메시지에서 말했듯이 우리 자신의 일부, 지구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우리의 착각과 오만을 목도하고서 충격을 받았다. 대형 쓰나미를 불러온 지구는 우리를 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었던 그 지구와 같다. 오랜 기간 잃어버렸던 경외감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명상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어머니 지구에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도쿄전력이라는 괴물은 바로 나

우리는 불교에서 삼독(三毒)이라고 하는 탐욕, 분노, 무지 위에 세워진 폭력적인 시스템과 문명의 일부였다. 도쿄전력과 정부를 비난하는 대신, 도쿄전력이라 불리는 괴물을 창조한 것이 우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도쿄전력은 정부와 언론, 다른 기업을 제어할 만큼 강력해졌다. 도쿄전력은 일종의 독재권력을 갖고 있고 우리는 전력 소비량을 1970년대보다 5배 증가시키면서 이 권력을 기꺼이 지지해왔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 ‘올 덴카(가정의 에너지원을 모두 전기화하자는 사업)’ 캠페인과 함께, 그들은 원자력발전소가 많을수록 안락하게 살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들었다.

철학하는 어부 오가타 마사토는 “치소는 나다”라고 말했다. 이는 미나마타병의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오가타가 무수한 생명을 살해한 수은 중독 사고의 주범인 기업 ‘치소’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렇다. 도쿄전력은 곧 나다.

3·11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혀서는 우리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지금 ‘회복’과 ‘재건’이라는 합창곡을 연주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재건할 것이냐다.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입증됐던 도시와 마을? 민주주의를 공허하게 하고 지역 공동체를 대도시와 전력회사, 중앙정부의 노예로 만들었던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시스템? 원자로 50기를 보호하기 위해 둑과 방벽을 재건하면 원자로가 앞으로 닥칠 지진과 쓰나미, 태풍, 홍수, 산사태를 이겨낼 만큼 충분히 강해지는가?

이번에 목격한 것과 같은 무지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할 무적의 ‘가미가제 정신’과 한때 유명했던 일본의 기술을 되살려낼 것인가? 끝없이 소비하게 하고 원자력을 비롯한 각종 발전소를 짓게 하며, 건강한 생태계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만들고 우리의 지역 공동체와 아름다운 풍경을 희생하게 했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재발명할 것인가?

다가올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재건’에 대해 크게 떠드는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년 간 남아있을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 없이 세계를 재건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원자로를 건설하면서 우리가 취했던 조치는 건강했던 과거의 재건과 건강한 미래의 건설 모두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3·11 이전 세계를 재건한다는 것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희망을 절멸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본을 재건하는 일을 거부하고 남아있는 가능성을 선택하자.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원자력 에너지에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식의, 3·11 이전과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도 들려온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학자 더글러스 루미스가 말했던 것을 반복해야겠다. 원자력에너지의 대안은 원자력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지 말자. 우리는 또다른 재앙을 감내할 여력이 없다. 지금 상황이 재앙이다.
　지금은 3월 11일 시작된 새 시대이자 불교학자 조안나 메이시가 ‘대전환’이라 부른 시기다. 메이시에 따르면 대전환은 환경운동, 반지구화·재지역화 운동, 개인적·영적 각성 등 세가지 층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3·11이 던져준 새로운 미래상과 함께 이 창조적인 과정에 동참하자.

원자력에너지 대안은 원전 폐쇄

물론 낙관하기 어려운 수많은 이유들이 있다. 당장 핵발전소를 폐쇄한다 할지라도 모든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데 수십년을 써야하고, 우리 이후의 세대들은 이미 발생한 상당량의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고의) 전환없이 부와 사치를 추구해야 할까? 어차피 너무 늦었다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한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인간 생존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 바뀌어야 한다. 메이시가 촉구했던 대로 우리가 사는 동안 생산된 핵물질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핵 감시인’이 되자. 메이시는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의 이야기는 깊은 위로가 된다.

“대전환이 생태혁명의 전지구적 실험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가치있다. 그것은 우리의 진짜 본성으로 돌아가는 귀향이다.”(조안나 메이시 <대전환> 중)

‘위기(危機)’라는 한자어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뜻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것은 어떻게 속도를 늦추고 규모를 줄일지 배우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단한 기회가 틀림없다. 진정한 지혜는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지금은 진실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