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4월11일 오후5시17분, 외부에서 업무를 본 뒤JR 중앙선을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도중, 전차가 역에 섰을 때 전차와 역 건물이 휘청거렸다. 계획 정전으로 전철 안은 불이 꺼진 상태였고,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지진으로 흔들거리는 전철 속 사람들은 모두 쥐 죽은 듯이 휴대 전화의 정보를 탐색하면서 차분히 앉아 있었다. 모두 이렇게 지진에 익숙해져 생활하는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체념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체념이 아니라 이런 환경 속에 놓였을 때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차도 3월12일처럼 여진 때문에 멈추지 않고(참고로 도쿄 시내의 매트로는 저녁까지 멈춰 있었다) 운전을 하였다. 후쿠시마가 진원이었고, 그 날은 M.7.1의 강진이었기에 도쿄의 M.3-4 정도는 이제 일상생활처럼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는 휴대 전화를 보여주며,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불통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장난에 담담하게 대응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진 치고는 강진이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아침저녁으로 지층을 들썩거리고, 이 원고를 적는 4월13일 새벽에도 계속 후쿠시마에는 지진이 왔다는 뉴스가 흐른다.

▲ 긴급 지진 속보를 알리는 일본 기상청 메시지

생각해 보면 3월11일의 관동 동북 대지진으로부터 1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지진은 멈추지 않고 하루 몇 번이고 이곳저곳에 여진의 공포를 남기고 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원전은 사고 등급 최악의 7로 공표되고, 요오드와 세슘을 넘어서 스트론튬 등의 방사성 물질까지 추출되어 해외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코 밝지 못한 비상사태가 우울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힘들지만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모색하면서 가장 두려운 민심의 패닉 상태로 인한 사회적 혼동만은 배제하려고 모두가 협력적이다. 동북 지방의 피해에 망연자실하는 희생자 가족들을 뉴스로 보면서, 그래도 도쿄는 생수도 차 기름도 모두 판매되는 상황이기에 여진 속에서 더 힘들게 버티는 동북 지방 사람들을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사회 유지를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눈부실 정도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벚꽃으로 뒤덮인 하얀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봄의 풍경에도 예전처럼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학교도 오래된 벚꽃 나무를 가득 메운 화려한 벚꽃 터널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신입생 환영회 조차 차분히 지내며, 여진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수업을 이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일본 고가네이 공원 내 만발한 벚꽃

학교 주변의 벚꽃 놀이터로 유명한 고가네이(小金井) 공원에도 변함없이 공원 가득히 만발한 벚꽃과 개나리, 매화 등이 어우러져 출렁거리는 꽃물결을 보며 잔디 위에서 봄놀이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싶건만, 조용히 공원을 걸으며 산책하는 사람 외에는 요란스런 휘청거림은 보이지 않는다. 매년 그렇게 흥청거리며 봄의 유혹에 술 한 잔 걸치며 세월을 노래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자숙을 하며 아파하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 같다.

모두 길고 긴 지진 생활에 둔해진 것이 아니라 지쳐가는 희생자를 생각하며 자제를 하고, 협력적으로 지금의 분위기를 무너트려서는 안 된다는 의식 속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조금씩 양보하고 있다. 도쿄 전력의 불투명한 원전 보고나 그 정보를 전부 파악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위기의식 결여라는 비판은 사태가 안정된 이후의 과제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칫 터지기 쉬운 애드벌룬 같은 상황을 냉철히 수습하여 무사 착지를 우선으로 하기 위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돕는게 AC(공익광고)를 통한 위기 극복에의 언론 홍보이고, 실제로 많은 문화인들이 대거 참가하여 힘을 합쳐서 이 국난을 극복하자며 호소하고 있다.

『일본을 믿는다(日本を信じている)』는 프레이즈도 다양한 형태로 방송되고 있고, 8-90년대의 편안한 대중가요 프로그램이나 단순히 웃을 수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가족 모두가 볼 수 있는 퀴즈 프로그램 등으로 예민해진 신경을 완화시키려는 언론의 역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안정되게 하기 위한 방송의 역할, 즉, 불안과 싸우는 사람들의 아픔을 아물게 하기 위한 '치유(healing)효과'인 것이다.

▲ 지진으로 무너진 구 미츠이 재벌 저택 석등(고가네이 공원 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본 사회가 정부만 절대적으로 믿기보다, 자신들의 위기는 스스로가 협력하여 자기 책임 하에 극복해야 한다는 자립적 성향이 강하게 교육받아 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패전과 공습의 폐허, 전후 오일 쇼크, 거품 경제의 붕괴, 한신 대지진 등의 극복을 거치며 자신들의 삶을 지키는 방법과 지진에 대한 평소의 대처 방법을 교육받아 온 결과, 위기 대처와 사회 유지 의식으로 질서 있는 절제로 들끓고 있는 지반의 강진 속에서 한 달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해외나 타 지역으로 나가거나 지쳐서 포기한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자신들이 살아 온 이 땅이 삶의 터전이기에 쉬이 버릴 수 없음을 익히 아는 터라 그동안 터득해 온 생활 유지법으로 수도 도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암묵의 질서가 있기에 끊임없는 정보가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도 천일염 사재기에 휘말리지 않고, 일시적으로 없어졌던 2리터 생수조차 편의점에서 한정적이지만 구입이 가능하고, 차 기름도 여유 있게 제공되는 안정된 생활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폐해 확대를 막기 위한 노력 속에 강진이 잦은 탓에 심각한 사태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지혜와 이성으로 질서를 지키며 하루 70차례 가까이 발생하는 여진(12일은 68회, 기상청 발표)에 대처해 나가는 시민 의식 발휘의 저력만이 이 시험을 극복하는 강력한 대응책임을 깨닫게 하는 봄날이다.

비록 긴 지진 속에 모두가 힘들어 지쳐가고 있지만, 하루 속히 안정을 되찾고, 인간의 인내력으로 참 잘 버텨내었노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거리를 수놓는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그런 희망찬 봄날을 약속하는 새로운 봄의 시작이라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 4월13일, 도쿄에서 새벽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