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칼럼니스트, 본지 편집위원 ]


동남권신공항 문제가 백지화 되자 한국의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신 공항 건설 예정지였던 밀양과 가덕 두 곳에 대해 입지평가위원회가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 경제성 미흡과 신 공항 입지로 두 곳 모두가 신 공항 건설에 부적격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역시 같은 입장에서 신 공항 건설에는 경제성 논리가 중요하다며 자신의 대선 공약인 ‘동남권신공항건설계획’을 백지화하는 모양새다.
영남권 정치인들은 이 대통령의 탈당까지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의 경제 논리와 영남권 정치인들의 정치 논리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 역시 자신의 정치적 텃밭인 영남권의 문제인지라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듯싶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박근혜 의원이 신 공항 건설 백지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대통령의 공약 위반은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신뢰를 상실한 행위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또 현재로는 경제성이 없을지 몰라도 2025년이면 인천 공항이 항공 물량을 소화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제2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신 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때문에 동남권신공항 문제를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삼겠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표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첫 번째 덕목은 원칙인 듯싶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변하고 달라진 것이 그동안 한국 정치인들이 보여준 원칙과 소신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 의원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에게 내세웠던 정치적 약속을 상황의 논리를 앞세워가며 손바닥 뒤집듯 어겨온 사실이 있다.
또 2025년이 되면 인천 공황이 한계에 도달해 제2의 허브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신 공항 건설을 꼭 영남권에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한국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영호남 갈등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만금 지역을 신 공항 건설지로 검토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새만금 지역에 인천공항 버금가는 신 공항을 건설하고 동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든다면 영호남간의 갈등도 해소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동안 불가능한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백지로 돌리고 박근혜 의원이 그의 대선 공약을 또 다시 내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짜고 치는 고스톱과도 같은 인상이 드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금의 상황은 이 대통령은 영남인들에게 병을 주고 박근혜 의원은 약을 처방하고 있는 모습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들은 오히려 작금의 사태를 박근혜 의원의 발언이 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든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각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박근혜 의원의 발언을 두고 “모란이 피기 전에 울어야 할 소쩍새가 모란이 진후에 울고 있는 격이라는 것”이 박지원 의원의 논평이다. 대통령의 백지화 발표 전에 할 소리를 왜 이제야 하고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의 의미이다.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수권 정당을 자처하는 제1야당이 아닌가. 사실 별로 내용도 없는 박근혜 의원의 발언에 비아냥거림이나 과민 대응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정치적 계산일 수도 있다.

또 한나라당의 내분을 부채질해 보겠다는 부수적 효과도 노리는 듯싶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오히려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을 정치적 이슈의 중심인물로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민주당이 자초하는 꼴이니 말이다. 물론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조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제2의 허브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면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남권보다는 새만금 지역에 신 공항을 건설해 지역 갈등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