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03.23. 중앙일보 <사설> ]


에리카 김은 왜 제 발로 한국에 들어왔나. 각종 의혹을 사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캠프에서 ‘BBK사건’ 대책위 해외팀장을 맡았던 김재수 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와 함께 ‘기획입국’ 한 것인가. 느닷없이 형사처벌 위험을 각오한 동기는 뭔가. 지난 대선 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명박 당시 후보를 곤경에 빠뜨린 배경이 있나. 지난달 25일 그가 미국에서 돌연 입국하면서 이런 의문들이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김씨가 누구인가. 대선을 앞둔 2007년 11월 이명박 후보가 ‘BBK 실소유자’라고 폭탄선언을 해 정국을 요동치게 한 장본인이다. 정치권의 추악한 부추김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또한 동생 경준씨와 공모해 2001년 창업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의 자금 319억원을 빼돌린 피의자다. 제대로 수사하면 폭로의 진위와 배후 등을 추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제 검찰은 허위사실 공표, 주가조작, 횡령 혐의를 받아온 김씨를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 했다. 허위사실 유포와 주가조작 혐의는 시효가 끝나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했다. 횡령 혐의는 인정됐지만 재판에 넘기지 않고 기소유예(起訴猶豫) 했다. 횡령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빼돌린 돈으로 미국 베벌리힐스에 350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한 범죄 행위에 비하면 지나친 관용이요 선처다. 김씨가 동생 경준씨의 범행을 도운 종범(從犯)이며, 친형제(경준씨)가 실형을 살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는 검찰 설명에 불구하고 ‘봐준’ 인상이 역력하다. ‘이명박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은 낭설’이란 2007~2008년 검찰·특검 수사 결과를 재확인하려고 이런 법석을 떨었나 하는 허탈감마저 든다.

이제 BBK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다. 검찰 설명으로 일부 의문은 해소됐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김씨의 면죄부(免罪符)를 놓고 모종의 거래가 있었나. 임기 내 정권의 부담을 덜려는 ‘털어주기 수사’는 아니었나. 진정 김씨 남매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 소동에 놀아났던 것인가. 김씨를 재판에 넘겨 국민에게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를 줬어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 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