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지난 3월 18일 밤 딸아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찾아 한일공동제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을 감상했다. 이 연극은 지난 2008년에 한국에서 개관 20주년을 맞은 예술의 전당과 일본에서 개관 10주년을 맞은 신국립극장이 동시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한일 양국의 관객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았고 이번에 한국에서 앙코르 공연된 것이다. 2008년 초연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모든 객석이 매진되었을 뿐 아니라 올해 1월 일본 신국립극장의 앵콜 공연도 모두 매진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세간의 평판대로 이 연극은 작품성과 흥행성, 연출과 연기에서 놀라운 완성도를 보였고, 중간 휴식을 포함하여 3시간 내내 관객들에게 긴장과 흥미 그리고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연극은 1960년대 말 오사카 지역의 쓰러져 가는 재일동포 부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야끼니꾸 곱창(燒肉ホルモン)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무대의 식당에서는 능숙한 연주의 장구와 아코디언 소리가 구성지게 들리고 일부 연기자들의 꾸밈없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과의 공감 거리를 좁혔다. 예사롭지 않은 도입부였다. 곱창 굽는 구수한 냄새로 연극이 시작되며 공중에서 벚꽃 모양의 종이꽃이 하염없이 쏟아지면서 연극이 끝난다. 여기에다가 한국과 일본의 연기파 배우들이 극중 내내 개성 있는 배역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무대 설치나 미술과 조명 등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면서 종합 예술로서의 연극 구성을 극대화 했다.

▲ 연극 포스터와 극작가 정의신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EXPO)를 앞둔 시기, 오사카 지역에 대대적인 도시 정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국유지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를 포함한 주민들이 대거 강제 철거를 당하게 된다. 일본의 고도성장 그늘에서 사회적인 차별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재일동포 젊은이들. 제주도 4.3 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재일동포 어른들. 이들에게 야끼니꾸 곱창집은 가난에 찌든 현실과 헤어나기 어려운 팔자를 맘껏 한탄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된다. 또한 곱창 집은 한국어, 일본어, 오사카 사투리 등으로 뒤얽혀 분출되는 신세타령을 모두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용광로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도시개발을 계기로 하여 재일동포 용길이네 가족은 해체되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일본에서 내쫓기듯 북한으로 이주해 가는 식구도 나온다. 곱창집 주인이 리어카에 부인을 태우고 벚꽃이 떨어지는 골목길을 나설 때, 죽었던 아들이 지붕 위에서 이들을 배웅하는 것으로 연극이 끝난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연극이 삶의 애환을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극 속에서 칙칙한 분위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평온함 없이 고함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무대에서 연기파 배우들은 마음껏 힘찬 목소리와 활기찬 동작을 펼쳐 보인다.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하는 언어나 동작이 사회적 차별과 빈곤으로 인한 억눌림을 해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시종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자 겸 연출가 정의신(鄭義信)은 재일동포 3세로 1957년에 히메지시(姬路市)에서 태어났다. 도지샤(同志社)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요코하마(橫浜) 방송영화 전문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했다. 1987년에 극단 ‘신주쿠 양산박(新宿梁山泊)’을 출범시켰으며 주로 극작가로 활동해 오면서 한때 직접 배우로 연극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의 체험담을 소재로 하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써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의 작품 가운데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작년 가을 한국에서 공연되기도 하여 ‘한일시평’ 제226호에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앞으로도 재일동포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 갈 것이라고 한다. (월간 ‘OKTimes’ 2011년 2월호, pp.58-59)

‘야끼니꾸 드래곤’은 2008년 일본과 한국에서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예를 들면 신작 희곡을 대상으로 하는 쓰루야 난보쿠(鶴屋南北) 희곡상 제12회 수상작이 되었으며, 무대작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표창하는 아사히(朝日) 무대예술상 제8회 그랑프리(최우수상) 수상작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 전국의 무대를 대상으로 하는 요미우리(讀賣) 연극상 제16회 대상을 수상했고, 도쿄 무대를 대상으로 하는 기노쿠니야(紀伊國屋) 연극상 제43회 개인상을 받았다. 또한 한국에서도 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뽑혔고 연극협회가 선정하는 ‘2008 공연 베스트 7’에도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