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혀로 만든 요리와 딱딱한 혀로 만든 요리. 그러자 제자들은 부드러운 혀 요리만 골라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랍비가 말했다. “사람도 마찬가질세. 그러니 언제나 혀를 부드럽게 하도록 노력하게나. 딱딱한 혀는 남을 화나게 하고 싸움을 일으키게 되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 며칠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의미가 유난히도 와 닿는 시간이었다. "일본침몰." 일본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아침, 한 일간지 1면의 헤드라인은 충격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영화에서 가져온 자극적 제목일 뿐’임을 깨닫고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안도의 한숨은 잠시, 출근길 내내 마음은 무겁고 머리는 복잡했다. ‘연구실의 두 신입생이 행여 이 신문을 봤으면 어떡하나, 제발 보지 말았어야 할 텐데….’ 올 3월, 필자의 연구실에 새로 합류한 두 학생은 모두 현해탄을 건너 온 일본인들이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친 후, 안부가 걱정돼 다급히 돌린 필자의 전화에 도쿄의 지인은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네 정서였다면 아마 "걱정해 줘서 고맙다"라고 답했으련만, 일본인들은 걱정하도록 폐를 끼친 것이 미안해 사과부터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듯 열도인들은 한국인과는 차원이 다른 조심스러움과 배려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굳이 ‘메이와쿠 문화(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라는 어려운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일본인을 겪어 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사실이다. 그러한 일본인들이기에 그토록 사랑하는 욘사마의 나라에서 발행한 어느 일간지의 ‘일.본.침.몰.’이 건넨 직설적인 메시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 조상에게 씻으려야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 나라, 최근까지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겨 우리의 속을 긁어대는 나라라는 점을 모두 감안해도, 우리나라의 일부 언론이 일본에 휘두른 ‘딱딱한 혀’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일본 총리에게 대통령이 직접 심려의 뜻을 전하고, 구조대를 가장 먼저 급파한다고 한들, 이미 휘두른 촌철살인의 말은 다시 담을 수도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 대하여 우리나라 언론은 꽤 자주 이런 식이었다. 지난해 여름, 고령 연금을 받던 도쿄의 최고령자가 이미 30년 전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복지국가 일본의 신화는 허상’이었다며 유난히도 크게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에 대해 방송사 기자인 필자의 지인은 “일본에 관한 것이라면 먼저 깔보고 비하부터 하려는 정서가 아직도 엄연히 한국 언론에 존재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 언론이 특히나 일본의 소식이라면 이토록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이 혹여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생각일까.
일부 언론의 격(格) 낮은 실수(?)에 대한 질타와 자성의 목소리가 이미 충분히 높아 있는 것 같다. 해서 필자의 전공과 관련한 주제로 칼럼을 다시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이제 정말 더 이상은 일본인 제자들에게 얼굴 못 들 일이 없어야겠기에 용기를 내어 주제 넘는 글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국 언론에 격이 없다고 밥상 앞에서 분개하는 엄마, 아빠의 대화에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도 한 술 거든다. “맞아, 너무한 거 아냐? 약 올리는 거잖아.” 사람에게는 인격이, 국가에는 국격이 있듯이, 이제 대한민국의 언론도 언격(言格)을 생각할 때다.
최종편집 : 2024.4.25 목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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