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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평양’과 후루야 변호사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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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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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0. 한겨레신문 <칼럼> / 김효순 대기자 ]


   
중동세계의 격변을 다루는 논평이나 보도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가 수시로 등장한다. 1980년 서울의 봄과 87년 6월 대항쟁, 멀리는 60년 4·19 민주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세계의 변화의 물결을 기뻐하면서도 진로의 불투명성을 걱정하는 마음 한구석에 민주화운동 선배로서의 경험이나 뿌듯함이 은연중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 사회에 없는 엄청난 문제가 요지부동 상태로 버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작년에 우리 모두는 정말 전쟁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휩싸였고, 올해의 전망도 여전히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아랍세계의 격랑이 더욱 거세져 미국이 뒷감당을 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이 내심 걱정된다. 아랍의 변화를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상황이 올까 우려해서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출범 이후 사실상 방관정책으로 일관했다.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양영희 씨가 만든 다큐영화 <굿바이 평양>에는 북송사업과 관련된 가족사가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조국귀환사업’이다. 이 가족의 인생유전은 냉전, 분단, 국제적 대치 속에서 우리 모두가 겪어온 시련의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양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로 오랜 기간 오사카의 동포 밀집지역에서 거주해 왔다. 아버지는 총련이 재일동포의 인권과 민족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고 열성적 활동가가 됐다. 70년대 초에는 10대의 세 아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고 막내딸 영희 씨만 일본에서 키웠다. 진학 취직에 차별이 많은 일본에서는 자식들의 장래성이 없다고 보고 공화국에 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북한으로 보내고 나서 식료품·의약품·학용품 등을 소포로 싸서 국제우편으로 보내는 게 모친의 일이 됐다. 큰아들은 북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영화에 나오는 화면은 결혼식, 생일 축하 모임 등 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관련된 것들뿐이다.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북으로 간 재일동포 가운데 불우한 최후를 맞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돈다. 그래서 누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는가에 대한 추궁의 소리도 당연히 제기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손가락질해서 끝날 만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재일동포를 백안시한 한국 정부, 식민통치의 유산인 골칫거리를 간단하게 처분하려던 일본 정부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50년대 말 북송사업이 시작될 때 적극 지지한 정치인 가운데 후루야 사다오(1889~1976)란 변호사가 있다.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변론해준 일본인 변호사로 후세 다쓰지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20년대의 조선공산당 사건 때 서울에 장기 체류하면서 변호한 사람은 후루야뿐이다. 그는 환영 집회에서는 3·1 만세사건이란 표현을 써 일본경찰의 소환조처를 받았고, 공판이 없을 때는 멀리 하의도, 상태도까지 찾아가 소작쟁의를 지지했다. 한번은 서울까지 찾아온 일본인 우익행동대원에게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 다행히 단도가 그의 미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전후에는 사회당 후보로 나서 세 차례 당선됐고, 자신의 정치적 신조에 따라 북한, 중국과의 우호 교류활동에 나섰다. 60년대 초반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아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후루야는 “그야 뭐라 해도 박헌영”이라고 말했다. 접견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창백해졌고, 김일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도쿄에서 사망했을 때 빈소는 재일화교들로 북적인 반면 재일동포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의 존재는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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