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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중동, 유럽의 가교 이집트 기행 (3)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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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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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벽의 나일강은 잔잔하였고, 크고 작은 유람선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자그마한 공항에 도착하여 중동 쪽의 시나이 반도(Sinai Penisula, 사이나이 반도 혹은 시내반도라고도 부름)행 비행기를 탔다. 꽤 날아왔건만 비행기 아래에는 온통 바위산과 사막밖에 보이지 않는 시나이 반도가 신비하게 보였다. 영국에서 말레이시아 항공으로 쿠알라룸푸르를 향할 때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칸다하르의 눈 쌓인 설산 위를 비행하는데, 그 산의 풍경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막막함도 느껴졌다.

   
▲ 시나이 반도 남부에 있는 화강암 기암괴석
시나이 반도 전체가 약 62,000㎢의 면적을 가진 이 곳은 기본적으로 험난하면서도 오랜 역사 속에 풍화되어 기괴한 형태로 만들어진 바위산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이로나 룩소르에서 보면 요르단이나 이스라엘 지역 쪽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지중해가, 남쪽에는 홍해가, 동쪽에는 아카바만이 있고(동쪽 해안은 이스라엘과의 국경, 팔레스티나 자치구 가자 지역의 경계), 서쪽으로는 수에즈 운하가 흐르고 있다. 남쪽 홍해 쪽을 향한 삼각형의 반도를 이루는데, 남부 시나이 산은 화강암의 바위산과 사막으로 되어 있고, 홍해를 마주하는 남쪽 해안은 세계 굴지의 고급 휴양지인 샤름 엘 셰이크(Sharm el Sheikh)가 있다. 이 지역은 홍해의 투명하고 맑은 수질과 천혜의 자연 환경을 즐기려는 크루징은 물론 산호초와 바다 밑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다이빙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필자가 이 곳을 오기 직전에 같은 호텔에 숙박했던 독일 여성이 다이빙 하다가 상어에 물려 죽었다는 뉴스가 크게 났기에 많이 걱정을 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러시아 남성들도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 곳은 겨울철임에도 20도를 전후 하는 따스한 날씨를 즐기려는 유럽인이나 러시아 신흥 부유층에 인기가 있어서 세계적인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카지노와 쇼핑 등의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세계 각지의 정재계 인사들도 즐겨 찾는 휴양지에다 지리적 요충지가 되다 보니 때때로 과격파에 의한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나이 반도는 제3차 중동전쟁(1967)때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점령을 당하다가 제4차 중동전쟁(1973)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미국이 중재를 하여 캠프 데이빗 합의(1978)로 인해 1982년에 이집트로 반환되었으나 북부 아프리카의 카이로와 달리, 시나이는 지역상 중동 아시아에 속한다. 필자는 다합 지역보다도 남쪽 해안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여정을 풀었는데, 호텔이 도로와 동떨어진 숲 속에 위치하건만 삼엄한 경비와 짐 체크로 입구에 내려서 호텔로 들어가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 배치를 기다리는 동안 탁 트인 넓은 로비의 바깥쪽을 내려다보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과 수 없이 많은 풀장이 계단식으로 설비되어 있고, 하얀 방갈로 건축물과 짚으로 만든 전통적인 파라솔이 늘어선 프라이베이트 비치가 에메랄드빛 홍해 바닷물과 어우러져 멋진 정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룩소르의 나일강과는 다른 홍해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 샤름 엘 셰이크의 아름다운 정경
넓고 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빛이 눈 내린 케임브리지의 영하의 날씨에 떨면서 [피한]을 온 우리를 녹여주기엔 충분했다. 소파에 걸터앉으니 호텔 직원들이 웰컴 드링크로 빨간 하이비스카스 주스를 가져다주기에 남국 향기를 맡으며 짐을 옮겨주는 이동차가 올 때까지 별세계의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그 날은 셔틀버스로 근처의 마켓으로 나가서 몇 일간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 뒤, 호텔의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쇼를 보면서 이집트의 전통 요리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에는 참새들이 지저귀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식사를 즐긴 뒤, 풀 사이드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따스한 태양 빛의 해변에 그동안의 과로가 풀리는 탓인지 몸살도 좀 났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는 동행한 이 지원 교수의 도움으로 차를 빌려서 현지 가이드(비쇼이라는 이 청년은 이집션(Egyptian)이지만 기독교 신자였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는 시나이 산의 성 카트리나(Monastery of St. Catherine, 혹은 캐더린) 수도원으로 떠났다. 샤름 엘 셰이크에서 아침7시 경에 떠나서 다합(Dahab)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시나이 산 쪽을 향해 총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눈앞에 펼쳐지는 웅대한 바위산과 끝없는 사막의 모래는 황토 적토 흙이 섞인 것이었다. 간혹 풀들이 보였지만 오아시스를 기대할 수 없는 사막이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현지 주민인 베두인 족들이 낙타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어딘가 분명 주거 환경이 있는 것 같았다.

주요 포인트 지역을 지날 때 마다 경찰 혹은 군인들이 검문을 하였는데, 우리가 사전에 미리 작성한 허가서를 체크한 뒤 차체 검사 뒤에 통과를 시켜줬다. 가이드의 말로는 허가 받은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시나이 반도를 수색하고 찾아야 하기에 예정된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중간 중간의 사막에 집 같은 시설이 있기에 사진을 찍으려니 군사 시설이기에 찍으면 형무소라고 금지시킨다. 복잡한 시나이 반도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괴암 기석의 바위들로 장관을 이루는 사막의 신비함에 눈길을 주면서 비쇼이의 열띤 설명을 듣다 보니 현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몇 몇 간이 기념품점이 있었지만 쉴 수 있는 시설이 충분히 마련된 곳은 아니었다. 열악한 화장실조차도 돈을 내야만 했고, 음료수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주차장에서 수도원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낙타에 관광객을 태우려는 현지 사막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모스크가 붙어있는 성 카트리나 수도원
우리는 신비한 돌산과 올리브 나무를 가꾸는 과수원 옆으로 해서 요새처럼 되어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를 위한 호텔이 마련된 길을 지나니 큰 올리브 나무가 있었는데, 비쇼이는 이 나무가 1400년이 된 역사의 나무라고 한다. 비쇼이 자신이 기독교 신자에다 이탈리아 등의 교회 성지 순례를 많이 해 왔기에 종교적 지식과 역사에 해박한 편이었다.

이 수도원은 험난한 바위산의 사막이 만들어 온 [와디(건조천)]를 타고 산정의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수도원 내의 샘물이 솟는 은혜로운 장소라고 한다. 종교적으로 모세가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성지이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성 카트리나의 유해가 카트리나 산 정상에 나타난 것을 수도사들이 옮겨와서 수도원에 안치했다고 하며, 교회 안에는 카트리나의 손목뼈가 놓여 있다. 믿음이 있는 신자들은 그 뼈를 보면 감동에 벅차리라. 이 수도원이 세워진 경위로는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제왕의 어머니 헬레나가 카트리나에 감명을 받고, 그녀는 불타는 떨기(덤불)나무(the burning bush)가 놓인 곳에 작은 챠펠(교회)을 세우라고 명했다 한다(Sharm El Sheikh and Sinai 영어판 47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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