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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중동, 유럽의 가교 이집트 기행 (2)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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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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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거대한 규모의 합세수트 여왕의 장제전

다음 날,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뒤로 하고 고대 신전과 왕가의 묘 등이 있는 룩소르(Luxor)를 향해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였다. 룩소르는 나일 강을 따라서 이어지는 이집트 최대의 고대 도시이고, 리비아 산맥의 붉은 바위산 아래로 넓은 사막이 펼쳐진 곳이다. 과거 이집트 제국의 수도로서 수 세기를 번창해 온 테베의 고도인 룩소르는 나일 강 동쪽으로 아멘 라(카르낙) 대 신전 등이 조성되어졌고, 서쪽으로 파라오의 장례식을 치루는 전당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토토메스 1세가 1700년의 전통을 깨고 역대 왕들이나 왕비의 무덤을 거대한 바위산에 숨겨진 계곡의 지하 깊숙한 곳에 비밀리에 매장하기 시작하면서 왕가의 묘, 왕비의 묘, 귀족의 묘 등이 조성되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 일찍 마중을 온 가이드와 함께 신 무바라크 관광 도로를 따라서 나일 강을 건너서 서쪽 거대한 돌산에 펼쳐진 계곡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일강을 건너서 금방 검문소의 검색을 받느라 1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계곡으로 들어가서 먼저 왕비의 묘 등을 본 뒤, 차를 타고 중간의 험난한 계곡으로 가서 이집트를 통치했던 여왕 합세수트의 장제전(장례식/제사를 치르는 신전)을 구경하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제전이 바위 계곡의 품속에 안겨 있고, 입구에는 돌계단과 거대한 파라오 석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점차 뜨거워지는 태양빛을 쬐다 보니 덥다. 무더위다. 이게 겨울이라면 여름엔 과연 얼마나 찜통일까? 영국에서는 대 폭설이라고 히드로 공항이나 스탄스테드 공항이 폐쇄되던 상황이었지만, 햇빛에 약한 필자에게는 깃을 세운 자켓 속으로 파고드는 햇빛이 상당히 강렬했다. 독자들이 만약 이집트 사태가 진정되고 카이로나 룩소르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여름철은 피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EU각지에서 느끼던 태양빛과는 현저히 다른 햇빛이 아프리카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 나일강의 어부들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가이드는 미리 봉고 차 안에 들어가서 에어컨에 몸을 쉬고 있다. 런던에서 온 커플과 우리는 곧 이동을 하여 왕가의 묘 계곡으로 갔다. 바위산들을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니 거대한 계곡이 나타난다. 참 이런 곳에 어떻게 묘를 만들려고 했을까? 당시의 노예나 전쟁 포로들이 이 묘를 만들고서는 어떤 처우를 당했을까? 끔찍한 생각을 하면서 무더위를 걸어 다녔다.

입구에는 사진 촬영을 제지하는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벽에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 문자와 화려한 문양을 더듬으며 지하로 내려가니 왕의 석관 등이 나타난다. 물론 석관 속의 미이라나 중요 유물은 카이로의 국립 카이로 박물관이나 고고학 박물관에 옮겨진 상태라서 그 형체만 남아있었고, 전부를 다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화제가 되고 있는 투탕카멘이나 람세스 왕 등의 무덤을 구경하는데 그쳤다. 왕의 묘나 왕비의 묘는 의외로 꽤 떨어진 곳에 마련되어져 있었기에 그 중간에 합세수트 여왕의 장제전에 들러서 갔던 것이다. 구경을 하고 나와서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아라베스크 돌 조각품 가게에 들렀다. 차를 주고 깨끗한 화장실을 제공하면서 물건을 사라고 하지만, 의외로 비싼 편이었다. 스카라베(Scarab,풍뎅이)는 영원한 생명과 풍족, 다산을 의미하는 이집트의 신성한 동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장식구 등으로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검은 돌로 만든 스카라베를 여왕 티티의 무덤을 보고 오는데 현지인이 신문에 둘둘 말고서는 계속 사라고 귀찮게 해서 하나 구입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기념품을 구입하지 않았던 터라 하나 정도 기억의 물건을 갖고 싶었는데, 200이집선 파운드를 부르기에 나중에 50이집트 파운드(£E)면 사겠다고 하면서 우리 차로 오려니 그렇게 팔겠다고 하여 50£E에 구입을 했다. 나중에 아라베스크 판매점에서 같은 물건의 가격을 물었더니 제법 비쌌기에 되레 그렇게 엉망인 흥정으로 구입했지만 구입했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스카라베는 지금도 필자의 컴퓨터 위에서 이집트의 왕비의 계곡을 기억하게 만든다.

오후에는 룩소르 시내를 마차를 타고 좀 다니다가 호텔의 풀장에서 피곤한 몸을 쉬면서 오랜만에 수영을 하였다. 사실 다니는 것도 체력전이거니와 밤낮으로 현지 상황을 알기 위해 안내 책자를 사전에 읽다 보니 지치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동쪽의 아멘 신을 모시는 카르나크 대 신전과 룩소르 대 신전을 갔는데, 두 신전은 3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사람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나란히 놓인 길을 따라 가면 그 끝부분으로 이어지는 곳에 룩소르 신전이 있다. 신전 앞에는 웅장한 탑문과 25M의 오벨리스크와 라무세스2세를 나타내는 거대한 화강암의 대 좌상이 나타난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2개가 짝이었는데 하나는 1833년에 파리로 운반되어 지금은 콩코드 광장에 있으니, 대영 박물관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류의 유물은 힘의 논리에 의해 분산되었음을 재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집트의 많은 오벨리스크 등의 유물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도 세워져 있었다. 문화재의 반환 문제는 우리도 가진 문제이기에 잘 보존했다는 합리화만으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내란이나 전쟁에 의해 밀매되거나 파손되었으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원래 있던 곳으로 가서 그 풍토 토지에 맞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에서 보는 올드카이로 전경

신전을 둘러보니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모래에 파묻혀 흔적을 감추려 했던 수많은 사적들이기에 석상들이나 열주가 많이 파손되긴 했으나 남겨진 형체와 규모만으로도 얼마나 크고 화려한 건축물이었는지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참으로 사람의 힘이란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규모였다. 웅대한 석상들과 아멘테프 3세의 열주, 예배실 등을 돌아보며 동아시아 문화와는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며 발전해 온 이집트의 역사에 젖어 있자니 현지의 초중학교 학생들의 단체가 견학을 와서는 필자에게 “헬로!”하며 말을 건다. 모두 해맑은 웃음이고 귀엽기 그지없다. 동행한 이 교수도 필자도 웃음으로 화답하자 깔깔대며 굿바이를 한다. 아이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일의 희망답게 밝고 맑기만 하다. 그런 아이들이 꾸밈없이 자랄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하며 우리는 나일강변의 호텔 근처에 머물던 펠루카(전통적인 하얀 돛단배)를 타고 나일의 오후를 보냈다.

괜찮은 맛의 이집트 차를 준비해 준 자칭 캡틴 짐이라는 중년의 사공과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사공이 생활 영어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한다. 그들은 학교 교육을 못 받아서 다른 취직이 쉽지 않기에 뱃사공을 하며 수입을 얻어서 일부를 고용주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생활하지만 많이 힘들다는 말도 털어 놓는다. 어디를 가나 복지 제도가 정비되어 있으면 수입이 적어도 생활할 수 있지만 교육도 복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회일수록 빈부 차이가 격심하고 민심이 흉흉해지니 이집트의 현실도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그런 사회적 폐단을 해결하지 못 한데서 시위 사태가 격렬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들 말로는 10대 초반부터 사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호텔에서 만난 튀니지 출신의 20대 여성 직원도 저임금의 노동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라고 한탄을 하던 것을 보면 반드시 개인적인 사정만이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의 쳇바퀴에 염세적인 반응의 발로가 시위 사태로 번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이로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고급 휴양지의 분위기를 가진 룩소르이긴 하지만, 마차를 모는 사람이나 약국을 가르쳐 주는 꼬마조차도 관광객을 인간적 대상이라기보다는 금전적 대상으로 대하는 분위기였다.
 

   
▲ 이집트 전통 자개 공예

처음의 친절과 돈을 지불한 뒤의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면 독자도 이해를 해 줄까? 지역 토산품인 아라베스크 돌을 깎아 만드는 가게에서도 점원이 신문지에 주인 몰래 말아 놓은 아라베스크를 보이며 돈과 바꾸자고 협상하려고 할 때, 생활 안정 보장이 신뢰관계를 구축시킨다는 구조를 다시금 생각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판단조차도 여유 있는 자의 교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깔끔하지 못한 금전 거래 관계로 인해 즐거울 여정이 불편하게 되는 이런 상황도 언젠가 개선되리라 믿으며, 이슬람 문화 속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는 호텔 로비 밖으로 보이는 나일강에 비친 석양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강 건너의 바나나 섬에 잠시 내렸다가 노을에 불타는 나일강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며, 언젠가 이 신전의 마을이고 이집트의 역사가 묻힌 룩소르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 새벽에 호텔이 마련해 준 런치 박스를 받아서 새벽 6시에 룩소르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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