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12.31 매일경제 <매경의 창> / 김홍신 소설가ㆍ건국대 석좌교수 ]


서기 732년에 발해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가 친정군을 이끌고 지금의 베이징 근처인 마도산까지 침공했고 수군장수 장문휴는 산둥반도를 점령해 자사 위준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이에 당 현종은 화급히 신라에 원병을 요청한 사실이 당나라 정사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인 당나라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군벌 안녹산이 발해의 국경과 마주했으나 발해 존속 229년 동안 단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다. 비록 적은 군사였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뱃심과 자존심이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 근원이었다.

최근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가 우리 경비함을 들이받고 해경을 폭행한 중국 선원 3명을 아무 조건 없이 송환했다. 우리 영해에서 불법 포획하던 중국에 공권력을 무시당하고도 아무런 대응 없이, 해양주권을 우리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 만약 일본이나 미국, 러시아 국적 선원이 중국 선원과 똑같은 불법행위와 폭력을 행사해 우리 해경이 다쳤더라도 그리 신속하게 풀어주는 아량을 베풀었을까. 중국 측으로부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무엇이 급해 우리 해경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시점에서 황급히 송환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중국 외교부는 국제법을 어긴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한국 정부에 책임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중국 선원의 불법행위가 분명한 동영상과 레이더 기록 등을 보내주었음에도 사과는커녕 한국 측이 원만한 수습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 발표는 곧 그 나라의 공식 입장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금 한국은 국토의 허리가 잘려 있고 북한의 호전적 태도와 수시로 겁박하는 목소리에 지정학적, 외교적 위치는 섬나라인 셈이고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피란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 두 가지 한국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한국은 번영의 토대가 되었던 평화와 교역이 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중국의 무례를 다소곳이 수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 이런 수모를 자청하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반성해야 한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의 변방사로 조작할 때 우리 정부는 침묵했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할 때도, 과거에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우기며 동북공정을 강행해도 눈치만 살폈다. 중국에 얕잡힐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번에도 중국은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를 동원해 "중국은 그동안 좋은 말로 한국을 타일러 왔는데, 한국이 멋대로 행동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협박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중국은 한국을 손봐 줄 지렛대가 많아 그중에 하나만 사용해도 짧은 시간 안에 한국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고 을러댔다.

중국은 외형으로는 군사ㆍ경제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내면으로는 허세를 부려야 할 만큼 정신적 약소국가를 아직은 면치 못했다. 사람이든 국가든 억지 부리고 떼를 써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약점이나 열등감을 감추려는 술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어디 그뿐인가. 내부의 취약점을 외부로 돌려보려는 안간힘으로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중국의 반체제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강제로 막는 저열한 행실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을 정도의 초라한 국가 위상의 근원은 바로 열등감이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이 근세사에 서구열강과 일본에 수모를 당하고 그 피해의식을 보상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왜 그리 주눅이 들었으며 어떤 열등감으로 가슴앓이를 하는지 냉정하게 자성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