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3.3.21 화 17:31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칼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2)
이수경 교수  |  editor@oktime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0.11.2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Mangiare! Cantare! Amore!(먹자! 노래하자! 사랑하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탈리아는 화려한 귀족 문화와 종교 문화를 형성하면서 때로는 현란하게, 때로는 퇴폐적 환락적 생활로 흥망을 되풀이 해 왔다. 그 속에서 건축,
   
▲ 미켈란젤로 설계의 카피톨리노 언덕 입구 코르도나타 계단의 동상들.
음식, 패션, 음악 문화나 축구 등이 발달해 왔다. 이탈리아도 로마 남부는 북부 아프리카나 지중해의 분위기나 지역성을 볼 수 있고, 북부 쪽의 피렌체, 토리노, 볼로나, 파도다. 베네치아, 밀라노 등은 북부 유럽과 연결하면서 교통 요지로 관광지로 발달해 온 까닭에 남부보다 비교적 부유한 편이라고 한다. 로마에 머물면서 그토록 많이 보았던 동냥하는 사람들도 북부에 들어서면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물론 유명 성당이나 교회, 관광지 입구에는 피렌체나 시에나, 산 지미냐노, 베네치아 등에서도 종이컵을 들고 동전을 달라고 엎드려 있는 사람들은 있었고, 동전을 컵에 넣으면 금방 확인하는 모습은 어딜 가나 같았다.

로마에 조금 익숙하게 되자 로마 패스로 전철과 버스, 트램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바지 포켓에 유로와 패스, 볼펜과 디지털 카메라만 넣고는 아무런 짐도 가지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다녔다. 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편하다. 물론 소매치기 걱정도 없어서 편하고, 두 손을 활기차게 움직이며 걸을 수 있어서 자유롭다.

다음 날에는 카피톨리노 박물관과 콘세르바토리 궁전 및 그 맞은편의 누오보 궁전을 다녀왔는데, 이 박물관들은 지하에서 서로 연결되는 큰 미술관으로, 입구를 들어가면 고대의 거인 손 발 대리석 및 조각이 광장 주변을 장식한다. 입구 오른 쪽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예술 문화의 보고라고 볼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전시실마다 가득 하다. 미켈란젤로의 섬세하면서도 자그마한 조각을 시작으로, 로마 궁전의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천장의 조각과 문양들, 기원전의 조각 작품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로 넘쳐난다. 그리스의 철학가들이나 수많은 황제들 및 기독교 성인들의 흉상들, 권력가들이 사용했던 식기나 실내 장식, 초기의 화려한 벽시계를 비롯해, 대 조각가 베르니니의 [메두사], 카라바조Caravaggio의 [세례 요한] 이나, 큰 방에 가득 채운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실로 큰 작품들이 각 방마다 가득 채운다.

또한 각 방의 거대한 프레스코(젖은 흙에 그림을 그린 기법의 벽화)와 달리,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어릴 때 카피톨리노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컸다는 일설에 의해 만들어진 청동 조각이나 발바닥의 가시를 뽑는 소년의 청동 조각 등은 어딘가 귀엽기도 하다. 이러한 조각과는 달리 큰 방의 벽면 가득히 그려진 로마 시대 병사들의 용맹 무상을 보여주는 전쟁 그림은 잔인하게 상대를 공격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거침없이 보여 준다. 반대편의 누오보 궁전에는 각종 조각들이 놓여 있는데, 원형 룸에 설치된 비너스의 방이나 1층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화적인 대형 조각은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 로마시내 유적들
박물관을 나와서 누오보 궁전 바로 뒤의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로마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의 옥상이 나온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석양에 비치는 로마 시내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고, 카메라의 연속 셔터를 누르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자연스럽다.

그 옆의 입구를 들어가면 이탈리아의 각종 전쟁사에 관한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인상적인 것은 국기를 시대나 혹은 전쟁에 맞춰서 각양각색으로 디자인을 하여 전투 사기를 고양시켜온 과거를 정리해 놓은 코너가 있었다. 때로는 전사한 군인들의 관을 덮었던 국기는 화려하게 수가 놓여 있었고, 때로는 전쟁터의 표상을 새겨 놓은 독특한 국기도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로마의 중세에서 근대사로 옮겨졌고, 로마의 대 홍수 등에 어떻게 시내를 재건하고 건축 설계를 해 왔는지를 설명해 놓은 방들이 있었기에 도시 건축 혹은 도시 계획, 자연 재해와 시설 복구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소재가 될 자료가 많이 있었다.

로마의 건축물과 로마시에 관한 오래된 자료를 보다 보니 폐관시간이라고 한다. 밖으로 나와서 트라야누스의 기둥 뒤쪽 화려한 계단과 네온사인에 휩쓸리며 콜로세움과는 다른 테르미니 방향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쇼핑 인파 속에서 이방인을 즐기며 레프브리카 광장 쪽으로 가다 보니 시끌벅적한 레스토랑이 나오기에 밖의 테라스에 앉아서 간단히 해물 파스타를 시켰는데 제법 맛있다. 얼큰한 라면이나 잔치 국수, 우동 종류가 먹고 싶었던 필자에게는 그것만큼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로마 와서 먹은 음식 중에서는 가장 입맛에 맞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메트로를 타기 위해 레퍼블리카 역 광장 쪽으로 걷다보니 왼쪽의 교회에서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가씨들이 부른다. 재 이탈리아 한인협회가 개최하는 음악회가 있다고 팸플릿을 주면서 들어 보란다. 낯 선 땅에서 듣는 한국 음악이라기에 반갑게 들어갔다. 1부에서는 로시니나 푸치니, 베르디 등의 잘 알려진 곡들을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가수 등이 감동 깊게 노래를 한다.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는 성악가들인 모양인데 모두 수준급이다.

특히 Una furtive lagrima는 좋아하는 곡이기에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이탈리아 가곡에 이어 2부에서는 산유화나 보리밭, 아리랑 등을 들려준다. 왠지 가슴이 찡해져 왔다. 필자의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이탈리아에 와서 43년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자라서 박사가 되었고, 지금은 대학에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당연히 자랑거리일 것이다. 그들이 떠나왔을 당시, 한국도 이탈리아도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던가? 먼 이국땅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힘들었을 그 분들의 삶의 행적을 생각하다 보니, 그나마 살기 좋다고 했던 일본에서 초기 유학 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어 했고, 국제 전화도 교환수를 통해서 하던 필자의 그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이 이탈리아 한인회 음악회는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 기념 음악회였는데, 팸플릿 앞의 인사말을 읽다 보니 감동적이었다.

[60년 전 우리나라는 6.25 전쟁으로 국토는 피폐해 지고 그 후유증으로 세계 최고(악)의 빈곤국가로 전락 했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근면을 바탕으로 한 재건으로 불과 50여 년 만에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지금은 세계 13위의 경제신흥국가로 우뚝 서서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의 일환으로 “공적 개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오늘“G20정상회의”의장을 맡은 의장국가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서울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 할퀴고 간 자국과 황폐함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 해 허덕이며 힘들어 할 때, 우리 사회는 외화 획득을 위하여 독일로 간호사를 파견했고, 중동 아랍 지역에 노동자를 파견했고, 가족을 두고 원양 어선을 타야만 했고, 하다못해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 '진실의 입' 조각상 앞에서...
그 뒤, 사회 전체가 잘 살아보겠노라고 성실히 노력해 온 결과, 지금은 한류 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거품이 많다. 정직한 민심보다 거짓과 위선으로 합리화 하고 약자를 기만하며 요령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잘 사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다. 게다가 한탕 치기 투기성 투자 성향을 선호하는 문제는 심각하기 조차 하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맹목적인 물질 우선주의 사상보다 자신들의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지구 땅의 국경을 쉽게 넘나들면서 국제 사회를 배우고 있고, 그 속에는 세계에 통용하는 인재도 자라고 있으니 그 만큼 한국도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런던은 물론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피렌체나 밀라노 역에서도 한국 제품 광고가 거리에 크게 선전되고 있었고, 필자가 머물었던 그다지 나쁘지 않은 호텔에도 한국산 TV나 컴퓨터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발전한 한국에 자긍심을 갖고, 가난을 이기려고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동포들이 조국의 번영에 가슴 뿌듯한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며 음악회를 통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뜨거운 감정이 요동을 쳤다.
돌아오는 전차 속에서는 뿌듯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사회성과 문화에 대해서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한인 성악가들의 노래 소리가 취침까지 심신을 따스하게 감싸줬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