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11.10 경향신문 사설 ]


출판시장이 극심한 불황인데도 인문·사회 서적이 잘 팔리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의 열기가 식지 않은 가운데 자유시장경제의 허상을 파헤친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외에도 상당수의 인문·사회 서적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를 정점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인문·사회 서적이 이처럼 가을 출판계를 석권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동안 가을 독서시장은 감성적인 소설·에세이류가 주도했던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가벼운 실용 서적이 퇴조하고 무거운 주제의 인문·사회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로는 우선 시대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꼽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정의와 올바른 것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고 보여진다. 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조정래의 <허수아비춤>도 비록 소설이지만 그 속을 들춰보면 어느 인문·사회 서적보다 직설적이고 울림 또한 크다. 재벌과 살아 있는 권력의 더러운 유착을 발가벗겼다. ‘경제 민주화’ 없이는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될 뿐이라며 독자들에게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주문하고 있다. 이렇듯 요즘 독자들은 현실과 밀접한 주제들을 찾고 있으며, 인문·사회 서적의 열기는 사회 개조를 바라는 목마름의 방증이라고 하겠다.

몇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인문·사회 서적의 부활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여전히 인문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인문서를 외면하고, 대학가의 전문서점들은 거의가 문을 닫았다. 또 시장이 위축되다 보니 첫 쇄를 1000부만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몇 권의 베스트셀러가 시장 자체를 키우거나 인문서 전체의 독서 욕구를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래도 올해 인문서 붐은 독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인문서에 대한 독자층이 폭넓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이를 고착화시키는 노력은 출판인들의 몫이다. 우리의 인문서도 이제는 더 깊고 넓어져야 할 것이다. 주제를 다양화하고 ‘인문서는 어렵다’는 인식도 깨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 필진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인문서가 ‘암울한 현실’에만 기댄다면 반짝 특수에 그칠 것이다. 인간과 미래를 성찰하는 근원적 의제를 설정하는 역작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