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10.29 매일경제 <사설> ]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지난 25일 6ㆍ25 참전 노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6ㆍ25가 소련과 중국의 사전 승인을 받은 북한의 침략 전쟁이라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상식엔 개의치 않는 그의 발언은 `중국에 한국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중국에 10월 25일은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조선을 지원하고 나선` 항미원조전쟁 기념일이다. 자국 참전 병사를 격려하려는 정치적 의미, 북한과의 관계를 강조하려는 혈맹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6ㆍ25는 300만명의 동족과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적 참극이다. 시진핑 같은 거물이 인과관계를 저버린 채 중국과 북한만의 이해 관점에서 근시안적 발언을 한다면 전 세계는 그의 지도자적 자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시진핑이 차기 국가주석 반열에 오르기까지 극도로 신중히 처신해온 행적을 본다면 그런 우려는 더 커진다. 시진핑 개인의 인생 역정은 중국이 경제개발 과정에서 보인 `도광양회(韜光養晦ㆍ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 힘을 기른다)` 전략을 빼닮았다. 중국이 G2 지위에 오르기 무섭게 미국과 환율ㆍ통상전쟁, 일본과 영토분쟁에서 `하드 파워`를 구사하는 모습을 볼 때 시진핑 시대 개막을 앞둔 한ㆍ중 관계, 나아가 동북아 정세는 쾌청해지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엊그제 내외신 브리핑에서도 "6ㆍ25전쟁은 국제적으로 논쟁이 끝난 문제이기 때문에 추가로 할 말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만일 일본 정치지도자가 비슷한 발언을 했다면 당연히 망언(亡言)으로 규정하고 대사 초치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을 일이다. 정치권 역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만이 "한국과 한국민을 무시하고 모독한 발언"이라고 지적했을 뿐 서로 모른 척하는 분위기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미묘한 시점이라 해도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까지 중국 눈치를 봐선 곤란하다. 한ㆍ중 경제 교류의 그늘에 가려졌던 중국의 실체는 북핵 협상과 천안함 사태 대응 과정에서 누차 드러났다. 그것을 아전인수로 해석하거나 쉬쉬하는 외교 노선 자체가 중대한 문제점을 노정한다. 시진핑은 사과해야 하고 한국 정부는 그걸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