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쿄가쿠게이대학 이수경 교수가 연구전념기간을 맞아 영국과 유럽지역을 방문하면서 느낌 점을 보내온 내용입니다.-편집자 주)

▲ 이수경 가쿠게이대 교수

필자는 지난 8월 21일에 방문 교수로 캠브리지 대학에 도착한 후, ‘종횡무진’이란 표현처럼 거의 매일같이 영국 곳곳을 다녔다. 2년 전에 옥스포드대학 학회 발표차 왔다가 캠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머물면서 꽃향기 가득하던 정원과 캠 강에 반사된 건축물, 활짝 웃던 사람들의 웃음에 반하여 있던 중 도쿄가쿠게이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의 배려로 이곳에서 연구 전념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오기 직전까지 미국 강연과 한국 출장, 성적 제출 등에 쫓겨, 히드로 공항을 향해 떠나기 세 시간 전에 짐을 꾸렸던 상황이었기에 캠브리지에 도착하면 앓을 각오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안식년을 보낸 지인 교수들이 주장하던 “중고차 사서 실컷 보고 다녀야 한다. 나는 30개 도시를 다 돌아다녔다.”는 자극을 받았던 터라 20 여년 만에 주어진 황금 같은 이 한정된 시간들을 어떻게든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철야상태가 계속된 뒤의 긴 비행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대학 근처의 잔디밭과 다람쥐와 새들, 캠 강의 펀팅(보트놀이)과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잘 정리된 정원 속의 각종 건축물을 빨리 보고 싶어서 짐만 내려놓고선 그대로 학교로 달려갔다.

▲ 옥스포드대학 애슈몰론 박물관

올해 801년의 역사를 맞은 캠브리지 대학 산하에는 31개의 칼리지가 존재한다. 영국에서 캠브리지와 쌍벽을 이루는 옥스퍼드 산하에는 35개의 칼리지가 있지만, 최근 10년간 영국의 입학시험 최난관 대학1위는 캠브리지 대학이고, 더 타임즈가 선정한 2010년 세계대학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옥스퍼드 대학이 노벨상 47명을 배출했다면 캠브리지는 83명을 배출하였고, 영국 수상 26명의 출신학교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건축적 역사적 특징을 지닌 문화재를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을 통하여 귀중한 문화재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함양해 온 영국 문화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사회이기에 개개인의 문화적 수준도 높고, 사회적으로 극도로 발전하거나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만족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화 없는 역사와 전통, 문화를 국가 혹은 지자체 수준에서 관광자연으로 발전 유지시키며 세계의 관광객을 고객화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머무는 숙소는 아름다운 정원이 앞뒤로 있는 하얀 집인데, 신문사나 통신사 특파원들의 출입이 잦아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2주일 내내 필자와 함께 수속을 밟고, 송영차로 어설픈 나의 캠브리지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해 준 마크 교수(하버드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한 그는 최근에는 한국영화 시사회 등의 다채로운 한국 문화 알리기를 하는 지한파 베테랑 교수이다)의 안내로 캠브리지 대학의 관광객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정원이나 시설 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뉴턴의 사과나무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트리니티 칼리지나 킹스 칼리지, 퀸즈 칼리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캠브리지 시내 중심가에는 그 지역 특산의 농산물이나 앤티크 등을 판매하는 재래식 마켓도 존재하여 항상 학교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대학도 성당 교회도 큰 관광자원으로 거듭나는 곳이 영국사회이다.

▲ 아름다운 Bath 공원

도착 후, 앓고 있을 시간조차 없이 캠브리지 시내를 걸어 다녔고, 형형색색의 정원과 강가의 오래된 건축물은 물론 역사적 위인들이 거닐고 즐겼던 사적지나 Pub(영국풍 선술집)에도 시간을 만들어서 열심히 다녔기에 8월말에는 열차를 타고 캠브리지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앤 공주가 자란 샌드링햄(Sandringham)성으로 갔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과 오밀조밀하게 가꿔진 전통적인 잉글랜드 가든과 온통 허브향기로 덮인 성 주변의 자연 경관에 빠지다보니 아무래도 영국 땅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8월 29일부터는 특파원에게서 구입한 폭스바겐 샤론 7인승(첫 주인은 이곳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인데, 3대를 걸쳤지만 상당히 안정감이 있는 훌륭한 애마 역할을 하고 있다)으로 약 1개월 동안 영국 전역을 돌았다.

근처의 정비소에서 차를 정비 받고 타이어를 갈고서는 곧장 영국 내륙지방의 코스를 선택하여 고속도로(모터웨이라 부르는데 런던을 제외하고는 고속도로 요금이 없다)를 타고 북부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도쿄의 제자가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라서 그녀와 같이 영국 횡단을 나선 것이다. 체스터, 셰필드, 맨체스터(산업혁명이 일어났던 곳인데, 한국에서는 박지성 선수 소속팀으로 알려진 도시), 리즈 등을 거쳐서 계관시인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윌리엄 워즈워드의 고향(그도 캠브리지 출신)인 호수지방(Lake District)에 밤늦게 도착하였다. 주말에다 예약 없이 달린 터라 심야의 숙소 찾기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우리를 기다려 준 패밀리 룸이 있어서 각자 예쁘게 꾸며진 방에서 피로를 풀었다. 이즈음에서 영국 도로를 원활히 하는 원형교차로(Roundabout)에도 익숙해진다.

▲ 에든버러성

눈부신 태양빛을 받으며 윈드미어와 그라스미어 등의 넓은 호수와 산 속의 작은 폭포와 라이달 언덕의 워즈워드 집들을 둘러보고, 선사시대 유적지인 서클 스톤에 들렀다가 북부 스코틀랜드를 달려서 심야에 에든버러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안겼다. 마침 인터내셔널 필름 축제 기간이었기에 시끌벅적한 거리 속에서 우리는 숙소를 찾았고, 꽤 괜찮게 보이는 숙소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어리둥절한 상황에 불이 났다고 빨리 나가라는 소리에 여권이 든 가방을 들고 비몽사몽간에 튀어나왔다. 이미 수많은 투숙객들이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나와 있었고, 소방차들이 왔는데 알고 보니 토스트의 누전으로 연기가 심하게 났던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숙박객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필요할 듯 한데 호텔 담당자들은 어느 누구도 그런 말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만 하기에 한국이나 일본과는 고객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생각으로 약간 씁쓰레함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가 교차하는 참으로 예쁘장한 항구도시를 돌면서 에든버러의 매력에 푹 빠졌고, 성곽 주변의 각종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수많은 자연 환경과 태양 빛 아래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을 보면서 아침의 해프닝도 잊었고, 지독히도 걸은 뒤 네델란드 측 해안선을 따라서 북부지방의 여행을 끝내고 새벽 해를 보면서 캠브리지로 돌아왔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필자 역시 학교에 묻혀서 살 것 같기에 런던시내에 5박 6일 동안 여정을 잡고는 런던시내를 누빌 수 있는 오이스터(다목적 교통권, 시간대에 따라서 상당히 경제적)카드를 구입하고선 구석구석 작고 큰 박물관, 런던대학과 임페리얼 칼리지 등의 학교와 미술, 과학사, 자연사 자료관, 궁전, 공원 등을 돌아다녔다. 마침 템스 강 축제 기간이었기에 엄청난 사람들이 강가 주변에 모여 있었고, 한국에서 온 재즈 가수들도 큰 코너를 마련하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많은 노점에는 각국의 대표적인 음식들과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고 그 옆에는 불경기를 타파하는 듯 버스형의 이동용 현금 지출 기계에 줄지어선 사람들이 소비심리에 부추겨서 현금을 빼내고 있었다.
런던을 상징하는 대형 관람차 런던아이의 꼭대기에서 보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 각종 명물 다리들과 성당/교회 건물들과 유람선 등이 천천히 시간을 잊은 듯 가을을 맞고 있었다.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인 박물관과 공원 등을 돌며 느낀 대영제국이 모아온, 때로는 침탈도 없지 않았던 수많은 인류사의 유산들을 전신으로 느끼며 왜 런던에 사람들이 모이고, 꼭 와보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 캠브리지대학 마켓

런던을 걷다 지쳤기에 이번에는 영국의 허리부분인 중부지방을 돌기로 했다. 새벽 잠 설치며 각 대학 선전기간인 오픈 캠퍼스데이를 맞은 옥스퍼드대학과 애슈몰론 박물관 등에서 영어권 최초의 대학가를 즐기며 렘브란트나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 흠뻑 젖은 뒤, 윌리엄 모리스가 절찬을 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코츠월즈 지방에서 웨일즈 쪽 글로스터, 첼튼햄, 위치콤, 바이브리 등지의 중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풍의 마을과 자연경관이 뛰어난 풍광과 정원, 성을 걷고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해리포터로 유명한 글로스터 성당에서는 중세의 역사와 현대 조형물, 그리고 웅장한 건축물 등을 보면서 종교와 역사와 유물과 지자체 살리기의 인프라 정비를 엿볼 수 있었다. 또, 그들이 낳은 세계적 문호 셰익스피어 관련지를 돌아보면서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문화가 바로 그들의 자존심을 양산하고 있음을 느꼈다.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