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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김과 웬호 리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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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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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10 문화일보 <지구촌 전망대> / 천영식 워싱턴 특파원 ]


   
스티븐 김은 8월27일 미국 법무부에 간첩죄로 기소된 한국계 핵정보 전문가다. 언론에 기밀을 흘린 혐의로 난데없이 간첩죄(espionage law)가 적용된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혹해했고, 이를 처음 보도한 문화일보에도 문의가 이어졌다.

법치국가로 알려진 미국에는 가끔씩 황당한 법률사건이 발생한다. 배심원과 논리적인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서 누구나 풍요로운 법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지만, 그 이면에는 무리한 법적용과 억울한 옥살이가 적지않게 빚어진다.

스티븐 김 사건은 1999년 발생한 웬호 리 사건과 닮았다. 대만계 미국인인 웬호 리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는 스티븐 김이 근무한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와 함께 미국의 양대 국립 핵 연구소다.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미국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세계 최고의 연구소다.

미 법무부는 당시 웬호 리에게 기밀누출 등 59가지 혐의를 적용, 간첩죄로 기소했다. 유죄가 인정되면 평생을 살아도 부족한 형량이 나올 판이었다. 미 정부는 중국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중국의 군사력이 커지고, 특히 핵분야에서 기술발전이 빨라지면서 중국으로의 핵기술 유출 우려가 높았다. 당연히 중국계 핵전문가가 타깃이었다.

웬호 리는 9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끝에 무죄로 풀려났다. 웬호 리의 모든 간첩 죄목이 무혐의로 밝혀졌고, 기밀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한 가지만 유죄로 인정됐을 뿐이다. 미 정부는 나중에 웬호 리에게 16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했고, 이를 보도했던 뉴욕타임스 등 언론들도 앞다투어 사과 보도를 하면서 희대의 간첩사건은 허무하게 종료됐다.

웬호 리 사건은 아시안계에 대한 미 정부의 차별을 사회적 이슈로 표출시켰다. 미 정부가 아시안계에게는 충분한 증거도 없으면서 무조건 간첩죄로 몰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선례였다. 당시 아시안 태평양 미국인 조직들은 웬호 리 기소 후 조직적으로 미 정부에 항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이 아시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종적 선입관을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웬호 리와 스티븐 김은 똑같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핵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점 외에 나란히 간첩죄로 기소된 동양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됐다. 웬호 리는 중국을 겨냥한, 스티븐 김은 미 정보조직 내 군기잡기를 위한 타깃용이란 점도 비슷하다. 미 정부의 간첩죄 기소논리에 따르면 웬호 리는 대만계로 중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한 것이고, 스티븐 김은 한국 출생이면서 결국 북한을 위한 간첩이라는 어설픈 결론으로 귀결된다.

스티븐 김의 혐의는 웬호 리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웬호 리는 직접 중국에 기밀을 흘린 혐의로 59가지 죄목을 지녔지만, 스티븐 김은 폭스뉴스라는 미국 언론에 기밀을 누출한 단 1건의 혐의로 간첩죄가 적용됐다.

웬호 리 사건의 교훈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시 웬호 리를 검찰에 고발한 장본인은 빌 리처드슨 에너지부 장관이었다. 중국인이 중심이 된 아시안계 조직은 리처드슨이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상공부 장관으로 내정됐을 때 웬호 리 사건을 들어 반대운동을 벌일 만큼 집요했다.

이 때문에 스티븐 김이 중국계라면 미 정부가 그렇게 쉽사리 기소하지 못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있다. 스티븐 김 사건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제2의 웬호 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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