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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강제병합조약을 되새기며
최영호 교수  |  choiygho@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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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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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오늘은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합방조약이 체결된 지 꼭 100년을 맞는 날이다. 한일합방조약은 한국에서 병합조약, 병탄조약, 합방늑약, 경술국치조약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호칭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관한 해석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약의 성립 과정에서 명확한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條約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합방조약을 체결했으며, 8월 29일에 조약을 공포 시행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편입되고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과거 합방조약이 일본제국 군대의 강압 아래에서 체결되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일본 제국이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소요 등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타 지역에 주둔해 있던 일본 군대를 서울로 이동시키는 등, 삼엄한 경비 속에서 조약 체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강압적으로 체결된 조약이라고 해도 불법이나 합법이냐를 둘러싸고는 그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약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견해로는 순종 황제의 최종 승인 절차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제기되고 있다. 병합을 최종적으로 알리는 조칙에 옥새는 찍혀 있지만 순종의 서명이 빠졌다는 점이다. 옥새의 경우 단순한 행정결제용 옥새인 칙명지보가 찍혀있고 국새가 찍혀있지 않다. 그리고 1907년 11월 이후 황제의 조칙문에 날인해 온 황제의 서명 ‘척(拓)’(순종의 이름)이 빠져 있다. 당시 순종은 강제병합에 직면해 전권 위원 위임장에는 국새를 찍고 서명했으나 마지막 비준절차에 해당하는 칙유서명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견해는 조약문 자체에 국제법상 형식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제국이 합방조약에 위임장, 조약문, 황제의 조칙 등 형식적인 문서들을 갖추고 있었던 점을 들어 형식과 절차에서 합법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합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20세기 초의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이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약소국을 병합하고 통치했던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합법론자들은 합방조약에 앞서 일본이 외교권을 장악하고 한국을 보호국화 했던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 (을사늑약)에 대해 고종 황제가 사실상 이를 승인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합방조약 체결 후 순종 황제도 사실상 조약을 승인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올해 5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의 대표 지식인 109명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 105명은 도쿄 일본교육회관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병합이 원천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병합이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라고 선언하고 합방조약의 불법성과 무효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합방조약을 애초부터 불법 무효였다고 해석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해석이 옳다고 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립운동이 불법운동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1965년에 체결된 기본조약에는 “한일병합조약을 포함하여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고 규정되어 있다. 국교정상화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 정부는 여전히 ‘이미 무효’라고 문구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합방조약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일본에 대해 조약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주장하는 단호한 자세와 함께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하는 역사반성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100년 전 무기력하게 국가의 운명을 완전히 일본제국에게 떠맡겼던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추궁과 병행하여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자생력을 키우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역사를 논하는 근본 이유다. 한반도의 지형상적 조건에서 볼 때 100년 전이나 오늘날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생존을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 모두가 대외 관계에서 균형성을 유지하고 열강의 각축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와 감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합방조약 100년을 맞으며 새삼 책임 있는 정치와 민주사회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합방조약 체결 과정에서 학부대신 이용직만이 군욕신사(君辱臣死: 임금이 굴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음을 택한다)를 이유로 반대하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국권을 통째로 넘겨주고도 대부분의 대한제국의 권력자들은 무책임 하게 권좌와 명예를 유지했다. 소위 경술국적으로 불리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 대신 조중응, 친위부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승녕부총관 조민희 등 8명은 조약 체결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았다. 조약 체결 후 공포 시행에 이르는 일주일 동안 순종 황제와 황후는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고관과 궁내 신하들에게 무더기로 훈장 수여식을 거행했다. 무책임한 권력자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평범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 [자료]  한일합방에 관한 조약문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데라우치마사타케(寺內正毅)를 각각 그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

2.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기재된 넘겨준다고 지적한 것을 수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3.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세비(歲費)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4.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의 조항 이외에 한국의 황족(皇族) 및 후손에 대하여 각각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받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공여할 것을 약속한다.

5.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부여한다.

6. 일본국 정부는 앞에 지적된 병합의 결과 전 한국의 통치를 담당하며 이 땅에서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의 신변과 재산에 대하여 충분한 보호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한다.

7. 일본국 정부는 성의 있게 충실히 새로운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帝國)의 관리에 등용한다.

8.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는 것으로 하며 공포하는 날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이상의 증거로써 두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이름을 기록하고 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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