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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푸들 신세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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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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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09 한겨레신문 / 정연주 칼럼 ]


   
▲ 정연주 언론인
1997년 영국 총리가 되었을 때 토니 블레어의 나이는 44살이었다. 수려한 외모, 능숙한 언변, 최연소 총리라는 젊음. 그는 18년 장기 집권한 보수당의 ‘늙은 이미지’와는 딴판의 신선함을 주었다. 그가 내건 ‘제3의 길’은 ‘저성장-고실업’으로 시달리던 유럽 나라들에서 ‘새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취임 당시 지지율이 무려 83%에 이른 데서 잘 나타난다.
그랬던 블레어가 10년 뒤 퇴임할 당시 지지율은 27%로 바닥을 쳤다. 그렇게 몰락한 결정적 이유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불명예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와 흑색선전에 근거하여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살상에 토니 블레어는 ‘부시의 푸들’처럼 충직하게 동참했다.

요즘 이명박 정권의 외교 행태를 보면 꼭 ‘미국의 푸들 신세’가 된 것처럼 보인다. 냉전식 대북 강경대응 - ‘천안함 사건’에서 보인 ‘혈맹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 - 미국 말 잘 들어야 하는 푸들 신세의 과정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에 올인한 외교적 편중으로 인한 대가는 엄청나다.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운명과 관련하여 잘 관리를 해야 하는 나라들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이란 제재’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의 올가미에 걸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란 제재’의 경우 그 피해가 하도 엄청나서 정부 고위 관리가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여기에 전시작전권 연기까지 애걸을 했으니, 앞으로 주한미군 분담금 협상에서도 미국은 꽤나 많은 돈을 요구하게 생겼다.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는 천안함 처리 과정에서 ‘미국 동맹’ 표를 얻기 위해 너무 매달린 게 결정적이다. 그렇게 매달렸음에도 ‘천안함 사건’은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었고,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 과정에서 잘 드러났듯이 한국 외교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사실 미국 처지에서, 특히 국방부와 같은 강경파 처지에서 ‘천안함 사건’은 꽃놀이패였다.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도 보내고, 무서운 세력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도 하고 싶었다. 또한 무기 판매를 위해, 그리고 로버트 게이츠가 장관으로 있는 국방부의 경우 높은 수준의 국방비 유지를 위해 북한 위협과 한반도 위기가 ‘필요’하기까지 했을 터다.(1991~93년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게이츠는 중앙정보국장 당시, 북한이 ‘수개월에서 2년 이내’ 핵무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는 강경발언을 자주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전개된 대규모 군사훈련에서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과 무기체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한국은 미국 무기 판매를 위한 좋은 시장이다.

게다가 더디기만 한 경기회복과 걸프만의 원유유출 사건 등 국내 문제로 수세에 몰린 가운데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게다. 이란과 북한은 미국인들이 정말 싫어하는 핵무기 개발국이다. 강력하게 고삐를 조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되었다. 경제적 타격뿐 아니라 한반도를 미국과 중국이 제멋대로 주무르게 만드는, 그래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종속적인 것이 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 구실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한반도가 강대국의 장기판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에 대해 철학도, 비전도 없이 그저 ‘대북 강경론’ ‘한-미 동맹’만 외치는 냉전시대 코드로 대처하다 보니 나라꼴이 우습게 됐다. 토목공사도, 외교도, 남북관계도 모두가 ‘70년대 방식’에 갇혀 있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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