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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전범 ‘두치’의 재판을 지켜보며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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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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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연 / 재캄보디아한인회 사무국장 ]


지난 7월 26일은 캄보디아 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하루였다. CNN을 비롯한 전 세계의 외신기자들이 국제전범 특별재판소에서 진행된 역사적으로 중대한 최종 판결의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몰려들었고, 국내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로 진행된 한 피고인에 대한 최종 판결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 킬링필드 전범 S21 수용소 소장 '두치'
그날은 다름 아닌 크메르 루즈 정권 시절 ‘두치’로 알려진 카잉 구엑 에아브(67세), 투얼슬랭 S21 수용소 소장이 징역 35년형을 언도받은 날이었다. 판결문 내용이 낭독되는 순간을 법정 안팎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수많은 크메르 루즈 관련 희생자 가족들은 기쁨의 탄성과 환호 대신 끓어오르는 울분과 복받치는 울음으로 이번 판결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사형제도가 없는 캄보디아의 법제도하에서 검사측은 피고인에게 종신형이나 다를 바 없는 40년형을 구형했으나, 국제 전범 재판소 소장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재판에도 비교적 협조적이었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있어 이를 정상 참작했다며 감형의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두치는 실제로는 앞으로 19년만 더 감옥에서 지내면 된다. 지난 1999년 체포된 후 수감되어왔던 11년과 전범재판소가 생기기 전에 군사법정에 의해 불법 감금된 점을 감안, 5년이 추가로 감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두치의 나이는 67세로 남은 형기 19년은 어찌 보면 종신형에 가까운 판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오직 이번 재판 판결만을 기다려온 수많은 희생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은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고, TV를 통해 생중계로 소식을 접한 전국의 많은 희생자가족들 역시 억누를 수 없는 울분을 토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지난 주 내내 캄보디아 정국이 논란과 혼란 속에 들끓었다.

계산상 두치에겐 19년의 형기가 남아있지만, 캄보디아 현행법상 관할 법원의 심사를 거쳐 이에 대한 동의를 얻게 되면, 형량의 삼분의 일 정도를 감형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권한은 국제전범재판소 권한 밖의 일이다. 따라서 이 법을 적용하면 두치는 앞으로 12~13년 정도만 형을 살 가능성도 있다. 그때쯤 그의 나이는 80세가 된다. 과거의 악몽 속에서도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질진 목숨을 끊지 못해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사이, 그는 자유의 몸이 되어 감옥문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점이 바로 희생자가족들로 하여금 이번 판결에 분노케 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캄보디아는 계속된 내전과 질병, 기아로 평균 연령이 37세에 머문 적도 있으나, 최근 의료 환경이 개선되어짐에 따라 80세 이상의 노령인구도 꾸준히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만큼, 희생자가족들의 이러한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가 된다.

한편,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잃고 수용소에서 갖은 고문 끝에 발톱이 다 뽑힌 채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희생자도 이번 판결소식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고 어느 외신 뉴스가 밝혔다. 그러한 만큼, 이번 판결은 앞으로 있을 비슷한 유형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오랜 기간 동안 캄보디아 사회 전반에 많은 후유증을 양산해낼 것으로 추정된다.

킬링필드로 지칭되는 캄보디아의 지난 세기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내전과 쿠데타로 점철된 피의 역사였다. 그 정점에는 붉은 혁명의 기수, 크메르 루즈 정권이 있었다. 당시 두치가 소장으로 일했던 S21 수용소는 한때 프놈펜의 중학교 건물이었다. 크메르 루즈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용소로 개조된 이 건물에서 무려 13,0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은 물론, 여자와 어린이 아이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불과 하루 사이에 600여명이 넘는 아이들만 죽인 악몽 같은 날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전직 수학 선생이었던 그는 심지어는 자신을 가르친 적이 있는 대학 스승마저도 목숨을 잃게 한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변론 과정 내내 자신은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기에 아무런 죄가 없다며, 뻔뻔스럽게도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지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대학살로 17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크메르 루즈 정권에 대한 첫 재판이 끝났다. 30여년이나 지난 후이기는 하지만,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로 최고위급 전직 관료들이 반인륜적 범죄에 연루, 재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국제적인 기준에 의해 비교적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나름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있게 될 전범재판을 받게 VIP(?)급 인물들이 아직도 다수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피고로 법정에 나서게 될 이들의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크메르 루즈 전직 외무부장관이었던 이엥 사리는 현재 84세이며, 그의 아내이자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 이엥 티릿은 78세, 속칭 ‘브라더 넘버 2’로 불린 2인자인 상임 위원장 누온 체아는 84세이며, 대통령이었던 키우삼판은 78세이다. 크메르 루즈의 최고 지도자 폴 포트만 지난 1998년에 죽었을 뿐 아직도 많은 크메르 루즈 전직 지도자들이 생존해 있다. 아직 재판 일정도 제대로 확정짓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많은 희생자 가족들은 두치를 이은 크메르 루즈 정권에 대한 재판이 하루 빨리 속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뉴스에 의하면, 이제 막 시작된 전범 재판이 올해 다시 열리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있다. 금년 9월에 재판 일정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두치 재판 건을 이은 두 번째 재판이 내년 언제쯤이나 속개될 지도 현재로서는 미지수라고 한다. 또한 현직 총리인 훈센을 비롯하여 정부 관료 중에도 크메르 루즈 출신이 많다는 점도 재판을 진행하는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대학살의 주범들은 이제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기거나 가까운 고령이기에 전범재판이 지연되면 될수록 암울한 과거 역사의 진실은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증인으로 나설 희생자들의 가족 역시 고령이고, 정규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이들이 많아 매번 재판정에 나서기도 어려운 만큼, 재판에서 제대로 된 증언을 하기에도 사실상 물리적인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았다. 하루 빨리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속개되어, 세상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튼, 이번 판결은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사회에게 나름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었다. 반인륜적 범죄자들에게는 다시 한 번 법과 정의의 엄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는 한편, 정의 구현의 구체적 실천만이 또 다른 제 2,3의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전 인류사회에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인류문명이 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혁명에 가까운 급진적 발전을 이루고, 이성 사회로 진보의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하지만,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르완다 대학살, 그리고 킬링필드 이들 모두 불과 채 100년도 안 되는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탐욕과 무자비한 동물적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21세기에 어느 곳에서건 또 다른 이름의 ‘킬링필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보장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도 반드시 반추해보아야 할 아픈 역사가 있다. 일본 위안부 문제와 6.25전쟁의 진실을 비롯하여 가까이로는 광주민주화 운동까지 많은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하나, 아직도 파헤쳐야할 역사적 진실들이 여전히 많이 묻혀 있다. 이번 캄보디아 전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 역시, 과거 불행했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깔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한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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