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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몰락이라니?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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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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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1950년대 중반이었다. 대학 강의 중 인문학 교수들이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이란 책의 제목을 잘 인용했었다. 한창 지적 호기심이 컸던 때라 나에게는 비상한 관심이었다. 독일계 학자인 오스월드 스팽글러가 1918년과 1928년에 펴낸 이 두 권의 책을 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책의 제목대로 서구의 몰락을 문명사적으로 예언 한 것으로 짐작한다.

   
 

고대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함으로써 세계 평화가 지속 되었다는 1천년 넘어를 많은 역사학자들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부른다.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Peace)다. 같은 풍을 따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말이 생겼다. 1945년에 세계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초강대국 미국이 로마제국의 후계자이듯 세계 질서를 새로 짜 나가 세계 평화가 다시 깃들 것으로 기대한 세계인들의 은근한 합의라고나 할까.

이 땅에서 전쟁을 ‘영원히(Once and for all)’ 종식시킬 숭고한 임무를 부여 받은 국제연합(The United Nations, UN) 본부가 미국 뉴욕 멘해탄의 허드손 강변에 우뚝 섰고, 마샬 풀랜(The Marshall Plan)이라고 불린 미국의 대대적인 원조 프로그램 아래 유럽의 전후 재건 사업이 한창이었고, 거의 세계 화폐인 달러를 전부 거머쥔 미국이 세계 금융을 좌우하던 시절이라 그런 기대와 희망과 국제정치학 용어가 생길만했으니 서구의 몰락 같은 말부터가 의아스럽던 때다.

트럼프가 하는 말

그러나 미국이 로마제국처럼 그런 영화를 오래 누릴까? 지난 수십년 간을 보면 미국 중심의 서방이 굳이 몰락은 아닐지라도 그 힘은 상대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어온 게 사실이다. 우선 실물 면에서 그게 역력 해졌다. 경제, 군사, 과학기술 면에서의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입김이 크게 줄었다. 금년 11월 미국의 대선 후보로 나올 트럼프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의 군사비가 벅차다고 분담금을 크게 늘리거나 철군을 시사하고 있을 정도니 이대로라면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2차 대전 중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목표였던 미국의 후방 지원을 받아 일본군의 대륙 침략을 겨우 면할 수 있던 중국은 공산정권 수립 후 배은망덕하게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3년간 유엔의 이름으로 세계 경찰을 자처한 미국에게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그 후 서구 식민종주국에서 해방된 신흥국가 간 계속된 지역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였지만 결과는 항상 교착으로 끝났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중국은 한층 더 과감해져 미국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대만에 대한 무력 침공 위협과 주변국들에 대한 노골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구 14억의 중국이 팍스 치나(Pax China) 흉내를 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서구의 몰락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한반도 문제도 그렇다.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핵 공갈을 일삼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은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서구의 몰락은 이런 국제적 힘과 재력 관계 말고 서구를 주도하는 영미국가 내부에서 더 빠르게 진전되고 있음을 더 걱정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영미문화권을 주도 해온 앵글로 색슨 켈틱(Anglo-Saxon Celtic)민족과 사회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퇴조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 가지 큰 원인은 이 지역의 국제 경쟁력의 약화와 함께 인구의 고령화, 저출산률에 따른 인구 감소로 제3세계 지역으로부터 대거 받아야 하는 이민자가 가져오는 이질문화다. 이런 유입은 이민자들은 용광로인 주류문화에 흡수되고 만다는 이른바 The Melting Pot Theory를 무색게 한다.

다문화주의

한때 백호주의 대신 다문화주의를 내세우는 내가 사는 호주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호주의 법과 제도는 아직도 서방의 가치와 생활양식이 근간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넓고 넓은 모든 분야와 사생활 영역을 파고 들어가지 못한다. 더욱 이민자들의 법 준수 정신이 약화되고 비협조적이라면 더 그렇다.

호주 전체 인구의 다수가 아직도 백인으로 간주된다. 유색인과 백인을 깔끔하게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국세조사에서는 해외에서 출생했거나 양부모 중 한 사람이 해외 출생자이거나 유색인이면 유색인이다. 이렇게 구분한 유색인은 전체의 45%나 거의 반에 가까워질 추세다. 다른 영미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이민자들은 대도시에 모이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는 현저하게 눈에 띈다. 호주의 최대 도시인 시드니의 경우만 해도 주요 전철역에서 내리고 타거나 상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유색인이지 백인은 아주 소수다. 근년 중국계가 특히 많아졌다. 시드니의 차이나 타운은 원래 시가의 한쪽인 헤이마킷(Haymarket) 지역 하나였는데 지금은 외각으로 4개 정도 늘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백인 문화의 변질은 갈수록 필연이다. 나 개인은 성장 배경이나 현재 처지로 봐 서방을 흠모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인류 보편타당한 가치에 부합하는 사상과 생활양식과 개인 간 매너와 에티켓에서 우리가 배울게 많은 건 사실이다.

거의 반세기도 넘게 오래 전에 호주에 왔을 때 유색인, 특히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의 인종차별을 걱정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들었던 영국 신사풍의 선진 사회 분위기(예외가 늘 있었지만)에 대체적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영업장은 물론 민원 업무를 맡는 행정 관청이나 일반 기관의 직원의 얼추 10의 7은 인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아랍, 필립핀, 남아프리카계들이다. 어떤 지인 하나가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는 걸 보고 놀랐다. 민원 창구에 백인과 유색인 직원이 있으면 내심 백인에게 걸리기를 바란단다. 시드니 전철역의 현장에 가보면 거의 전부가 몇 개 특정 지역 출신 유색인이다. 뭘 물어보면 따듯하고 공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 드물다. 비슷한 유색인 전문의도 많다. 그런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다. 50년대의 한국과 같다. 그들이 그런다면 결국 유색인, 백인 할 것 없이 전체가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이민자 사회 간 공조가 필요하나

삶의 질은 물질만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래 이민을 결정할 때 이렇게 바뀌는 영미사회를 바라보고 한 건 아니지 않은가. 요즘 한국인의 역이민 이야기를 흔하게 듣게 되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 한인사회에는 우리대로의 단체장과 이른바 지도자들, 그리고 주류사회에 진입한 2,3세대 전문인들이 많다. 제2의 고향이 될 호주(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마찬가지)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갖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노력할 수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안 보인다. 알다시피 이 지역 한인들은 생김새가 급속히 늘어난 중국인과 같아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당연히 위와 같은 노력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하지만 역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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