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 소설가

어느 사회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불가피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 그렇고 지역끼리의 마찰은 심리적으로 적대감이 표출된다. 갈등의 대표적인 예를 꼽으라면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에서 오는 갈등이 아닐까 싶다.

1992년도 4월에 LA에서 일어났던 흑인 폭동은 한인들이 애꿎게 갈등의 격랑에 휘말리게 된 사건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두순자 사건이 먼저 폭동의 불씨를 품게 되었다. 한 흑인 소녀가 가게에 들어와 돈도 내지 않고 음료수를 가방에 넣는 것을 목격했고 주인이 이를 말리자 흑인은 맨주먹으로 한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15살이라고 하지만 몸집이 큰 흑인은 동양 여자가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두순자는 권총을 꺼내 발사했고 살인죄로 기소가 되었다. 두순자의 가족은 이미 30여 차례 강도를 당했기에 늘 목숨의 위태로움을 느껴 권총을 준비해 둘 수밖에 없었고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였다. 판결은 처음엔 두순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가 나중에는 4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로 마무리가 되었다.

두순자 사건이 일어났던 그즈음에 로드니 킹 사건이 일어났다. 1년 후, 백인 경찰에게 폭행당한 로드니 킹의 판결이 있던 날에 LA 도시는 화염에 휩싸였고 시내는 전시를 방불케 했다. 로드니 킹의 유죄 여부를 떠나 백인 경찰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불복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백인이 사는 동네에는 즉시 주 방위군이 배치되었다. 폭도들은 백인거주지에 진입이 어렵게 되자 굶주린 이리 떼처럼 밤거리를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한인들의 가게로 들어가 불 지르고 약탈하며 자신들의 울분을 쏟아내었다. 한인타운은 그들의 감정받이가 되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붕괴 되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한인들의 멘탈도 함께 무너졌다. 흑인들이 자신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는 한인들에 대한 평소의 아니꼬운 감정이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훗날 자성의 목소리가 있긴 했으나 그들과 손을 잡고 화합을 외치기엔 먼저 그 분노의 뿌리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예전에 내가 일했던 직장은 흑인 동네와 가까웠다. 한 번은 퇴근하고 운전하고 가는데 반대편의 차에서 바퀴가 빠지더니 중앙선을 넘어서 내 차 쪽으로 굴러오는 게 아닌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 어. 그 바퀴는 왼쪽 차체와 부딪치고 인도 쪽으로 굴러갔다. 나는 차를 세워 바퀴에 부딪힌 자동차 바디를 살폈다. 굴러온 바퀴의 압력으로 부딪힌 자리가 움푹 파였다. 상대방 차도 멈췄다. 2명의 흑인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도로를 가로지르며 빠진 바퀴를 잡고 뛰어갔다. 우그러진 내 차는 본 척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나는 손짓했다. 그랬더니 그중 1명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위협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쩌라고! 네버 마인! 나는 황급히 차에 올랐다. 사과받기는커녕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흑인 동네에는 대형마켓이 거의 없다. 설사 대형마켓이 있다고 해도 구조가 약간 다르다. 물건 올리는 선반과 돈을 내는 계산대가 따로 분리되어있어 물건값을 계산하지 않고는 잽싸게 튈 수 없게 만들어져있다. 대형마켓 대신에 ‘리커 스토어’라고 불리는 스몰마켓이 있다. 주로 한인들이 그 잡화상을 운영한다.

원래 인간 사회라는 게 영화의 제목처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건 이해의 또 다른 문제다. 권총을 들이대며 금전등록기를 강탈해가는 무지막지한 흑인이 들끓는 동네에서 생선튀김을 팔거나 가발과 악세사리를 팔며 생존해가는 한인들의 뚝심은 정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