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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죽음과 3.1운동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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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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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 뉴저지

1897년 10월12일 고종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치렀다. 고종이 조선대신 ‘대한제국’을 새 나라 이름으로 선포한 것은 주변 제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남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동시에 ‘광무개혁’을 발표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산업 발전을 이루려고 했다.

그러나 점점 야심차게 침략의 고삐를 조여오는 일본제국을 상대할 힘이 없었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고문정치(1904년)를 시작으로 외교권 박탈(1905년)했다. 이어서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켜 버리고(1907년) 군대를 해산했다.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 조약’이 맺어지고 대한제국은 사라졌다. 고종은 ‘이 태왕’으로 격하되어 경운궁(덕수궁)에 머물게 되었다.

평소 건강했던 고종은 1919년 1월21일 갑자기 사망했다. 일제는 뒤늦게 뇌일혈로 사망 원인을 발표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민중들 사이에 일제의 독살설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증거가 확실하지 않아 단정하기 어려웠다. 일제의 감시가 서슬 퍼런 칼날과도 같아 함부로 ‘독살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당시 무관 출신 한진창은 고종이 독살되었다고 확신하였다. 개혁 운동가 윤치호는 한진창에게서 들은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에 남겼다.

1.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갔다. 2. 고종황제의 팔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올라 한복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3. 황제의 이가 입안에 빠져있고 혀가 닳아 없어졌다. 4. 황제가 죽은 후 식혜를 가져왔던 2명의 궁녀가 의문사로 피살되었다. 이 사실은 시신의 염을 한 민영휘, 나세환, 민영달이 한진창에게 알려주었다. 훗날 일본 측의 궁내성 제실회계 심사국 구라토미 유자부로 기록을 살펴보면 고종이 조선 독립운동과 관련이 되었다는 이유로 독살되었다고 적고 있다.

1919년 개최되는 파리 강화회의에서 조선합병의 부당함을 호소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일제는 을사조약을 인정하는 황제의 서명을 요구했으나 끝까지 거절하여 독살하였다는 일본 정계의 정보를 일기에 적었다.고종황제가 일제의 독살에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민중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암울한 시기에 정신적 지주였던 고종의 독살설은 가슴속에 품고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이 순하고 허약한 나라의 민중들은 3월1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댔다. 맨손으로 만세를 부르는 민중들을 향하여 일경들은 잔혹하게 총칼을 휘둘렀다. 그해 4월 말까지 전국에서 참여한 인원은 110만 명, 무도한 일제의 진압으로 조선인 7,500여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4만5,000 명 이상이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전개한 독립운동이다.

우리의 목표가 ‘자주독립’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결과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뿐 아니라, 망국으로 위축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는 3.1정신을 이어받아 함부로 넘볼 수 없고 간섭을 받지 않는 강력한 자주국방, 독립국가로 태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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