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인회장대회

이 지역에 나온 1~1.5세대들의 강한 모국지향성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이유로는 (가)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과 인종적 이질감, (나) 모국에 대한 향수와 옛 것에 대한 익숙함, (다) 가족과 친지들과의 유대가 강하고, 그에 따른 모국 왕래가 빈번하며, (라) 이에 더하여 모국 정부와 단체가 공여하는 각종 재정 지원, 서훈, 모국 초청 프로그램, 모국으로부터 방문 해오는 고위 인사를 만날 수 있는 현지 공관 주최 여러 간담회와 환영 만찬 초대 등 많은 동포 친화적 ‘모국 요인’들을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의 한인들에 대한 모국의 위치를 안 보이는 강한 자석에 비유해 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중앙집권적 재외동포정책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세계 각 지방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한인회와 이들을 국가별, 구역별로 확대 조직한 한인회총연합회를 대표하는 450여명에 이르는 회장들을 매년 서울로 불러, 행사를 벌이는 세계한인회장대회가 그런 예(例)이다.
그 외에도 세계한상대회, 세계무역인대회, 세계동포기자대회 등이 비슷한 형태로 서울에서 모임을 갖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서방지역 모든 한인사회에 현지의 이른바 ‘유지’들로 구성된 지역협의회를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재외동포참정권 실시에 결정에 따라 더 심화될 것이다.


필자는 모국 정부가 이 지역 한인사회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재외동포정책의 수립과 감독 기능이 거리가 먼 서울에 있는 사실, 현지 한인사회의 구심점 부재, 동포 언론의 취약성 등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모국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 없이는 그 막강한 영향력은 모국과 현지 한인사회 어느 쪽에도 크게 도움이 안 되고 막대한 예산을 소모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외 한인사회에 대한 모국 언론의 역할은 모국과 동포 사회 간 현재의 ‘정보와 영향력의 흐름’의 구조를 본다면 더 선명해진다. 그 흐름은 현재 철저히 모국에서 동포사회로의 일 방향 형이다. 이 지역 1~1.5세 한인들의 매체행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어느 지역에서나 접근하기 쉬운 모국에서 제작된 신문,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비디오, 인터넷을 더 읽고 보는 편이고, 사석에서도 현지 뉴스보다 모국의 뉴스를 화제로 올리는 일이 더 많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즉 모국의 매체 수용자가 교포 매체에 노출 될 경우는 드물다. 그러므로 현지 교포매체의 보도는, 명예훼손 시비를 자청하면서까지 과감한 스캔들 폭로의 형태가 아니라면, 모국의 의사 결정자들에게 전달 될 기회가 거의 없다. 따라서 모국 매체의 보도가 없다면 재외동포정책에 관한 한, 모국정부의 기관장과 단체장, 현지에 나와 있는 공관장, 총영사, 기관장, 단체장 자리는 무풍지대다. 실제 이들은 서울의 매체 보도에 크게 신경을 쓰지만 현지 한인 매체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재외동포 관련 대회도 좋은 채널이 될 수 있을 텐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회의 어젠다와 행사 절차를 서울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정, 해외 대표자들의 취약한 위치와 준비부족 등의 이유로 한국의 정권 실세와 고위층들의 강연 듣기와 프로젝트 시찰 위주이다 보니, 60~70년대에 흔했던 해외 한인들을 향하여 막대한 예산 들여 하던 정권 홍보를 방불케 한다.
이런 강연 내용들은 해외에서도 인터넷과 신문, 방송으로 늘 접하여 익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해외 참석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모국을 자주 드나드는 동포들이다.

보도관련 몇 가지 착안점

(1) 금년도 재외동포 지원 예산은 총 1,250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정부 총예산에 비하여, 그리고 관련 부처별로 쪼갰을 때 미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수혜자인 영세한 해외 한인 단체들에게는 아주 귀하게 써야 할 목돈이다. 이에 비하면 사회자 약자인 소수민족에 따로 공여되는 거주국 정부의 지원은 대개 영어교육과 정착 서비스가 고작이다. 그 경우 모국의 재원 배분이 집행 기관의 정치적 편의나 선심에 따라 결정된다면 현지 사회의 발전을 돕기보다 이른바 지도자와 단체장들을 매(每) 정권과 그 현지 창구인 공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다. 모국 언론이 재외동포사회 보도에 있어 착안해야 할 점이다.

이 분야 예산은 기구별로 가장 큰 몫을 받는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해외 주재 공관, 문화원, 교육원, 문화홍보 담당관을 둔 외교통상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재향군인회, 여성가족부, 직능 단체 소관 등 여러 채널을 거쳐 영달되고 집행된다. 이러한 경우 소기의 목적대로 잘 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가지 개선 방안은 지원을 지금의 수혜자 단체 중심에서 구체적 사업 중심(projects-specific)으로 바꾸는 것이다. 치밀한 사업 제안서(proposals)에 반영되는 사업 자체의 경제성, 성공 가능성, 해당 사회 필요의 중요도, 신뢰성 등 엄격한 평가(On its merits/실적 중심 심사라 함)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업 선정 과정에 현지의 필요를 더 잘 아는 현지 인원의 전문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참여하는 것이지만 어느 해외 한인사회에도 이런 논의를 활성화시킬 지적 구심점이 조성 되어 있지를 않다고 본다.
지금의 결정 과정은 대체적으로 '정치적이'라고 말한다면 맞다. 신청 단체의 규모와 세력(예건대 인원이 몇 명, 그에 따르는 압력 단체로서의 힘), 기관에 대한 친화력 또는 로비, 기관과의 유대, 외부로부터의 청탁 등 다른 고려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 결과는 예산은 아무리 용도에 맞게 잘 짜여 있어도, 서류상에는 몰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국가와 커뮤니티의 1차적 필요성 보다 예산을 결정하거나 집행하는 기관의 필요에 맞게 사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2) 해외 한인사회에는 코리언이 붙는 단체 활동과 사업과 행사가 많다. 모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가 되겠지만, 거기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정부 예산이 뒷받침한다. 눈먼 돈도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외 사정은 크게 다르다. 아마도 미국을 제외 한다면 지역 한인회의 1년 예산이 웬만한 이곳 한인 교회보다 적으니, 한인회의 존재 이유가 되는 커뮤니티의 더 중요하고 실질적인 사업을 못하는 실정이다.

왜 한인회 등을 위한 공익 자금의 조성이 어려운가? 이유는 분명하다. 전체 재원의 풀에 비하여 쪼개 갖는 단체와 행사가 너무 많아 그런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사업과 일은 의미가 있고 그래서 중요하다는 감각을 갖게 되어 있다. 행사와 활동 내용을 자세히 따져보면 ‘자기 역할 만들기’나 ‘놀이문화’에 지나지 않고 중복되는 게 많다. 또 단체가 많다면 커뮤니티의 통합된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모국의 언론도 이들의 행사와 단체 활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보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3) 해외 한인사회 보도 차 나오는 모국의 기자들은 보통 현지의 단체장 등 외부에 드러난 인사들을 찾게 되는데, 거기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얼마나 실태를 정확히 반영할 지는 의문이다. 리서치와 합의에 따른 자체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의 축적이 없어서 그렇다.

리서치가 있어야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한인사회의 문제와 필요(문제가 있으니 필요/needs가 있다)를 알게 된다. 정책이란 다름 아닌 한정된 재원의 효과적 배분이다. 리서치와 지식이 없으니 응답자들이 열거하는 문제점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각양각색이며 단편적인 게 특징이다.
언제 들어도 똑 같은 정체성과 한국어 교육, 청소년 지도, 무조건적인 문화원(현지)과 동포청(모국)의 설립 등의 필요성이 그런 예다. 가치와 문화가 상충하는 거주국 여건에서 어떻게 청소년을 지도할 것인가에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는 없다. 서방 어느 한인사회에서든 거주국과 모국을 향한 로비와 거주국의 정치과정에의 참여가 강조되지만, 자체 사회에 대한 지식이 없고, 따라서 그 사회에 대한 필요를 정확히 모르는데 무엇을 로비하고 왜 정치 참여가 필요한가에 대한 정답이 안 나온다.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나 그 외 재외동포 관련 큰 모임과 세미나에서 듣게 되는 한인 단체장들의 제안과 발언에 알맹이가 없고, 행사 자체가 흔히 전시용으로 끝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말해도 재외동포정책의 두 근간은 동포들의 주류사회 진입과 민족정체성 유지를 위한 지원이다. 불행하게도 이 둘은 크게 봐 한쪽을 잘하면 다른 쪽을 잘 못하는 상호배타적 관계다. 이 서방지역 한인들의 경우 앞서 언급한 모국지향성과 함께 지나친 민족정체성이 주류사회 진입에 장애가 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예외가 있긴 해도 한인 교회나 한인 단체 활동에 너무 시간을 보내는 1.5~2세들 가운데는 전문인으로서 주류사회 진입에 실패하고 한인사회 안에서만 배회하거나 일찍 포기하고 모국으로 유턴하는 사례가 많다. 이게 모국의 이익이라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또 요즘 영미국가에서 대두되는 반 이민 정서의 바탕에는 아시아인들은 주류로의 통합을 기피하는 집단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는 점도 유념할 일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지금 모국의 재외동포정책 아래 지원되는 대부분의 사업들은 어쩌면 이미 너무 강조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민족정체성을 더 공고히 하는 옥상옥이 아닌가 염려된다. 이에 비하면 현지에서의 고용과 성장과 발전을 돕는 생산적인 프로젝트는 드물다. 이는 민족정체성이 걱정되는 재일, 재중, 재러 동포사회와 반대인 서방지역 한인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짜이는 재외동포정책 때문이라고 봐 진다. 모국 언론이 재외동포사회의 발전 보도에 앞서 유념해야 할 또 다른 점들이다.

몇 가지 제언

(1) 한국 매체의 해외 정규 특파원은 손으로 셀 수 있는 몇 개 주요 도시에만 나가 있다. 그들은 한국 관련 주요 국제 뉴스만 커버하기도 바쁘다. 그러므로 다른 해외 지역과 한인사회에 대한 보도는 주로 비상근 통신원(stringers)의 몫인데 이들에게는 큰 임무가 주어지지 않는 게 관행이다. 따라서 동포사회의 발전보도는 본사로부터의 특별 취재팀이나 그때그때 사절단 수행 등 딴 일로 나오는 기자들에게 맡겨야 하는데 현지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이들의 기사가 정확하고 심층적이 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개선책으로는 당연히 이 분야에서도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 기자의 양성, 본사 취재팀과 현지의 겸임 기자나 통신원과 현지 전문인 간의 팀워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지로 나오는 보도진은 지금과 같이 공관, 한인회, 다른 접근이 용이한 단체와 거기에서 추천 받은 인사만을 만나보는 안일한 취재 관행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2) 한국의 언론은 교포매체(인터넷 포함)의 내용에 대한 모니터 활동과 거기에서 나오는 발전 관련 기사를 전재하거나 기사 아이디어를 얻는 일을 늘려야겠다. 모국 매체의 재외동포 기사는 연합통신의 스트레이트 뉴스의 전재가 대부분이다. 교포 매체에 실린 좋은 기사는 모국에도 전달되는 관례가 생긴다면 탁월한 심층기사를 쓰는 동포 언론인, 언론도 많아질 것이다.
또 한국의 주류 신문은 해외 전문인이 이 발전 문제와 관련 유익한 기고를 해온다면 칼럼으로 실어주는 관례도 늘어나야 한다. 앞서 지적한바 모국과 동포 사회 간 커뮤니케이션의 일 방향적 흐름을 수정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