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보고(寶庫)

모국에 대한 동포사회의 잠재적 기여를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자산이다’가 된다. 하지만 이 대전제는 자동 사항이 아니다. 하기에 따라서는 자산이기는커녕 부채가 될 수 있다. 보통 그 자산으로서 꼽아지는 영역은 자본 투자, 무역, 관광과 송금 수입, 고급두뇌 유입 등이다. 최근의 추세로 봐 몇 가지를 더 들 수 있다. 호주의 워킹 홀리데이, 그보다 훨씬 뒤인 최근에 시작된 유사한 프로그램인 미국의 WEST(work, English, study, travel) 비자와 일반 취업 비자로 이들 나라에 입국하는 한국인들은 우선 언어장벽 때문에 대부분 동포 기업에서 일자리를 갖게 된다.
이민 초기 한인들은 대개 동포사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영세 자영업을 택한다. 더 큰 규모로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도 동포사회를 비빌 언덕으로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동포사회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국가정책의 틀 안에서 봐야 할 이유다.

동포들이 지금 서방 현지에서 느끼는 장래 전망은 50-6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그때는 미국 등 부자 나라로 나가기만 하면 성공이었다. ‘보릿고개’로 회자되던 빈곤에 비하면 가서 무엇을 해도 더 나은 삶이었고, 해외 경기도 좋아 나간 사람은 모두 모국의 이익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재외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한 모국 언론의 역할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그간 달라진 국제경제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어렵게 가지고 나온 재산을 사업 실패로 날린 사례, 모국의 부모와 친인척에 기대어 자본을 빼 내와야 하는 사례, 몸은 해외에 있어도 돈은 모국에서 벌어야 하는 사례, 이것저것 안 돼 모든 것 접고 역 이민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계 수치대로 근래 들어 역 이민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장래를 위하여 애초 재원 유출을 감수하고 장려했던 이민정책은 실패가 되고 만다.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다. 살기가 어려워 동포들이 겪는 심각한 갈등의 파장은 주류 사회로 번져 나가게 되어 있으며 그에 따른 한국의 이미지 손상도 크다. 거주국의 주류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코리언의 매춘 조직, 탈세, 범죄, 뇌물 공여 등 각종 비리와 편법 사건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보도가 흔하다면 정부가 국내와 해외에서 큰 돈 들여 하는 국가홍보 활동의 효과는 상쇄되고, 국가 브랜드는 피해를 본다.

또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금전 사기, 단체장 부정 선거,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하는 동포 상호간의 법정 소송이 아주 흔하고, 이에 따른 한인사회의 재정적 손실도 심대하다. 이런 사건과 분쟁들의 뿌리를 더듬어 가보면 직간접으로 모국과 모국의 가치와 연관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모국의 언론이 동포사회의 발전과 환경감시 보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맡아 주어야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다.

모국은 보이지 않는 자석

이 지역 동포사회에 대한 한국 언론의 큰 역할이 필요한 더 중요한 이유는 서두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서방 한인사회에 대하여 모국이 갖는 강한 잠재력과 영향력이다. 이 영향력은 누구나 현지에 나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생계 수단을 위한 최소한의 현지화가 아니라면 커뮤니티의 정책 지향, 구성원들의 의식구조와 행태 등이 거주국보다 모국과의 관계에서 더 많이 정해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서방지역의 한인들은 이른바 조선족, 고려인, 재일교포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서방 지역 한인 1세대와 1.5세대의 강한 모국 지향성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지 않은 이들에게 민족정체성에 올인 하는 모국의 중앙집권적 재외동포정책, 모국의 경제력 신장과 그에 따르는 사업 기회 등의 시너지 효과가 그렇게 만든다.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도 이미 인구가 2세, 3세와 그 이하로 내려가고 있지만 모국지향성이 강한 1, 1.5세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는 (가) 이민, 유학, 방문에 의한 새로운 인구 유입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으며, (나) 그렇게 해서 공고해지는 1세대 층이 한인 단체장으로 전면으로 나서는 반면, 현지에 자란 세대는 거기에 깊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2세 이하 세대도 취업으로 봐서 주류사회에 통합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이지, 실제는 한인사회라는 더 가까운 물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현지인과 다른 자신의 외모와 피부색에 따른 인종적 의식, 무시할 수 없는 한인사회의 구매력과 시장의 인센티브(예컨대 변호사, 의사, 회계사, 무역업 등), 가족 압력, 배우자 선택과 결혼에 의한 인척관계, 교회와 그 외 많은 청소년 한인 단체로의 소속 등 촘촘히 짜인 또래 집단을 기피할 수 없는 사정이 여기에 중간 변수로 작용한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