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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대의 한국어 교육
캐나다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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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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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 문인협회

   
 

지난 7월, 손자의 서머스쿨 교육을 참관했다. 노스욕 맥키 퍼블릭스쿨에 한 달간 개설한 그 과정은 ‘캐나다 한국학교 연합회’가 주도하고, 한국 정부와 복합 문화정책을 표방한 캐나다 정부도 관심과 지원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학기 중에 영어로 생활하던 아이들이 동족 또래들과 어울려 한글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한인 밀집 지역답게 참여자의 60%쯤은 한인 후예들이었다. 유치원 과정부터 8학년까지의 한인 아이들 200여 명을 여덟 클래스로 편성했다. 이웃한 다른 민족들도 페르시안 한 클래스, 만다린 두 클래스, 광둥어 한 클래스, 필리피노 한 클래스로 편성해서 그들 나름의 교육을 하는 모습이었다.

캐나다의 한국어 교육은 대개 교회 시설에서 주일에 종교 활동과 병행해 시행된다. 손자가 다니는 학교에선 한인 학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는 모처럼 한인 친구를 많이 만나서 그들과 함께하는 내내 상기된 모습이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에 대한 교육에 충격받았던지, “할아버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 미역, 생선은 이젠 먹지 못해요?” “일본은 오염수를 왜 꼭 바다에 버리려 하나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해?” 같은 심각한 질문을 날마다 쏟아냈다.

종료식에서 아이들은 ‘오! 캐나다’와 함께 애국가, 아리랑을 힘차게 제창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플래시몹을 하며, 북과 장구로 사물놀이를 펼칠 땐 “둥 둥, 쿵~ 자작”하는 큰 울림이 아이들의 뇌리와 가슴에 ‘한국의 소리’로 새겼을 것이다. ‘얘들아, 한국의 말, 글자, 노래, 춤을 잊지 말거라. 그 속에 우리 조상의 얼이 깃들어있단다. 조상 전래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리면 타 종족의 존중을 받기는 어렵단다’라는 메시지에 휩싸인 순간이었다.

주중에 아이를 매일 접하는 나와 아내는 일상생활 중에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런데 조금만 생소한 말이 섞이면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말에는 한자漢字에 뿌리를 둔 단어가 많아, 그때마다 뜻풀이를 해주어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비슷한 문구를 예시하며, 특징적인 표현법을 되풀이해서 알려주어야 아이의 머릿속에 좀 남는 것 같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면서 수없이 겪었던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손자는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 고스란히 겪는 것을 본다. 한국말을 배우려는 열의가 높아질수록 단어의 뜻풀이에 바치는 시간도 늘어나서, 자칫 한글 공부에 정나미가 떨어져 교육의 진전이나 결실이 멀어질까 봐 걱정도 된다.

한글과 한국어를 익히는 것이, 가족의 화합에도 중요함은 귀 따갑게 들었으니 아이도 잘 알 테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는 영어, 불어의 다음이다. 캐나다의 공용어를 세련되게 활용하는 공부만 해도 힘에 겨운데, 한자의 뜻을 담뿍 머금은 한글 단어들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 아이의 입장은 피곤할 것이다. 간단한 생활 용어 나열의 수준을 넘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한글, 한국어 교육은 영어, 불어 외에 제3의 언어를 배우는 셈이다. 이 지점은 아이의 한국어 실력이 어른들이 기대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될지, 아니면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말지를 결정짓는 분수령일 것 같다.

후세대 한국어 교육이 녹록치 않은 것은, 내가 캐나다에 첫발을 딛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다행인 것은 그간 한국의 국력이 크게 신장한 데다 한류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한글과 한국 문화를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는 점이다. 한류의 회오리바람은 가난과 독재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동, 중남미, 동남아 인민들의 마음속에도 희망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으니, 한인들에게 이보다 뿌듯하고 유리한 환경 변화가 달리 있을까?

그런 나라의 젊은이들이 생소한 한글과 한국말, 한국 노래를 자력으로 익히는 어려움에 비한다면, 우리의 후예들이 겪는 곤란쯤은 웃으며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유엔과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평가도, 우리 민족의 창의성을 부러워하는 갈채 같아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고 보면, 조상님들이 한국 문화와 한글로써 이미 한류의 바탕은 깔아준 셈이 된다. 이렇게 물려받은 기초 위에서 한국 문화의 꽃을 피우는 것이, 오늘 21세기를 사는 한인들에게 지워진 시대적 소임(所任)이 아닐까.
하지만, 다른 종족들이 힘들게 자습해서 얻은 한국어 실력보다 우리 아이들의 실력이 못하다면, 그건 전적으로 한인 기성세대의 불찰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가족생활에서 언어의 장벽이 빚어내는 소통의 장벽, 사상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방치한 채로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후세대의 한글, 한국어 교육’을 외면한 채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느라 그리 바쁩니까?”라고 물어보고 싶다. 한국 문화에서 ‘한글’, ‘한국어’를 뺏을 때 무엇이 남을지는 어렵지 않게 아실 테니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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