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2.26 월 13:37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교포지논단
‘마을마다 열사비’ 론
연변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08.2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채영춘 / 논설위원

   
 

잡목과 잡초로 우거진 외로운 산비탈에 스산하게 방치돼있는 열사기념비,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4메타 훌쩍 넘을 기념비의 겉벽은 떨어져 내리고 여러 곳에 균열이 생겨있었다…

일전에 연변의 절경으로 알려진 어느 시골 등산로 입구에서 목격한 처참한 광경이다. 산행코스를 밟으면서 가끔 열사기념비 주변 환경이 좀 불결하다거나 기념비 외벽에 칠한 페인트가 퇴색하여 눈에 거슬린다거나 하는 유감 같은 건 더러 있었으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함께 동행 한 이곳 태생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는 이 열사기념비가 문전성시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특히 애국주의 전통교양기지로 되면서 중소학교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열사기념비 주변도 늘 숙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 지역의 홍색명소로 자리매김하였었다. 그런데 도시화에 따른 농촌의 엄청난 변화와 인구 대이동으로 열사기념비를 찾는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이 성스러운 산비탈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가 결국 작금의 상황에 노출된 것이다.

연변의 열사비나 혁명유적지비들은 대체로 지난 전쟁 년대 열사들이 희생 되였거나 사건이 발생했던 현장을 터전으로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지대에 모시는 게 관례로 되여 있다. 청산리전역대첩비나 봉오동전투기념비, 15만원 탈취 거사비, 13용사 기념비 등 연변의 허다한 유적지비와 열사비들이 그러하다. 이번에 목격된 어느 황량한 산비탈에 외롭게 방치돼있는 열사기념비 역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의 손이 미치지 못하여 거칠게 변해있지만 지형 상 철길과 도로가 가깝게 있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고지대의 산중턱이여서 한때는 선망의 눈길을 끄는 명소였을 것이다.

산비탈 열사기념비에 상감(镶嵌)돼있는 혁명 열사들은 모두 이 지역 태생들로서 국내 항일전쟁과 해방전쟁, 토비숙청 그리고 항미원조전쟁에서 장렬히 희생된 영령들이다. 무심히 지나쳐서도, 망각돼서도 안 되는 성스런 산비탈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과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가 이 영령들의 ‘보호자’가 돼야 하는 이유이다. 이들이야말로 연변의 오늘이 있게 한 공화국의 특대공신들이 아니겠는가?

연변은 이름 난 로혁명근거지이다.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서 희생된 연변지역의 열사는 1만 5970명, 그 가운데 조선족열사가 1만 4000여명으로서 연변지역 전체 열사의 88.2%를 차지한다. 연변혁명 열사능원에 모셔져있는 대형 검정대리석 영령비에는 각 현, 시별로 이들의 존함이 상감되어있다. 그리고 각 현, 시의 농촌마을 마다에 축조된 열사기념비들에는 그 마을 태생 열사들의 존함이 새겨져있다. 주안의 이 모든 열사기념비들은 연변의 특이한 정치생태 풍경구조물이 되어 실시간으로 후세들의 애국애족애향의식을 자성해보게 하고 있다.

모든 기념구조물은 망각을 막기 위한 계시물이라 할 수 있다. 남경대학살기념관 광장에는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30만 동포의 영혼을 상징하는 30만개의 돌이 깔려있는데 그 돌 위로 걸을 때 나는 사박사박하는 소리는 조난당한 원혼들의 성토의 소리라고 한다. 일제의 만행을 세세손손 전하는 국치(国耻)기념물이다.

종교성지인 예루살렘에 가면 돌로 쌓아 축조한 48메타 길이의 ‘통곡의 벽’이 있다. 유태민족 신앙의 상징이자 전 세계 유태인의 순례지로 되어있는 이 벽은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 하여 많은 유태인을 죽이는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족은 유태민족이나 국내 기타 종교적인 성향을 가진 민족과는 달리 종교가 없는 민족이다. 대신 조선족은 자신을 도탄 속에서 구해주고 나라의 주인으로 되게 해준 중국공산당과 사회주의 중국에 절대 충성하는 것을 드팀없는 신앙으로 삼고 이 나라 강토를 지켜 목숨 바쳐 싸워왔으며 조선족의 우수한 이미지를 이 땅에 심어놓았다. 연변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열사비는 그 대표적 상징물이다.

하경지 시인의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라는 유명한 시가 발표된 지 올해로 37년이 되였다.

그동안 연변 농촌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거듭하였다. 원래의 초가삼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대신 청기와, 홍기와 팔간집들이 가뜬하게 재단된 철제울타리 안에서 아리따운 자태를 뽐낸다. 가로세로 뻗은 아스팔트 도로 양편은 갖가지 화초들이 만개하고 빈곤촌 모자를 벗은 새마을들이 헬스장, 문구장과 더불어 환하게 웃고 있다.

농촌이 변하고 농가가 변하고 농민들의 삶이 변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을마다 열사비’라는 연변 농촌의 독보적인 홍색풍경선이 대부분 문화적 승화를 거치지 못한 원초적인 ‘열사비’ 현상에 머물러있으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고지대의 어떤 열사비는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그 같은 ‘유기비’ 처지로 망각돼가는 운명에 놓여있다.

향촌진흥 전략으로 농촌이 안아온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열사기념비라는 연변의 신앙상징물이 빛나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마을 어디에 자리 잡았든 열사기념비는 영원히 새농촌 건설에서 중점적으로 보완돼야 하는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열사기념비가 어찌 보면 향촌진흥의 경제, 민생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구조물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리민족의 성격, 정신, 의식, 사상, 기질을 가장 집대성한 상징아이콘으로서 우리 마을, 우리 지역 사회가 내장한 긍정적 에너지의 동력원천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따라 40여년 전 로세대 혁명가의 “연변 로혁명근거지 혁명유산은 선대들이 후대들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호신부”라고 한 명언의 진의가 가슴에 맞쳐온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 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연변의 소중한 혁명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적 시각으로 국내의 독보적인 홍색풍경선을 보듬어 ‘마을마다 열사비’ 신앙 상징물을 엄숙하고 비장한 애국주의 추모공간으로부터 마을마다 에서 가장 수려하고 쾌적하며 심신을 도야할 수 있는 경건한 홍색문화테라스로, 세인들이 우러르며 체험할 수 있는 숭고한 홍색관광문화명소로 격상시켜 진정한 의미에서 홍색유전자의 문화적, 정신적 가치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필자: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이중주’)

자치주 창립 70돌을 맞는 경사의 날에 경건한 마음으로 ‘마을마다 열사비’의 그 심오한 의미를 되새기며 주안의 모든 열사기념비들을 한번 잘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잡목과 잡초로 우거진 외로운 산비탈에 스산하게 방치돼있는’ 그런 영령들의 비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보호자’ 의식으로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의 연변 독보적 존재의 문화적 승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 연변상징 아이콘이 위대한 버팀목으로 영원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