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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청과 이민의 뿌리 인천의 미래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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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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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 / 한국이민사박물관장]

121명의 선조가 제물포를 출발하면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공식 이민은 12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인천은 한반도의 집산지로 기능했다. 신문물이 인천으로 들어와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한반도의 산물이 인천을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당시 인천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호기심이 높았다. 1902년 나가사키에서 갤릭호에 오른 102명의 이민자 중 86명이 인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민 초기 인천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도시 발전에는 Tolerance(포용)가 중요하다. 이주민의 도시로서 모든 것을 포용해 온 인천이 모범이 될 것이다. 포용은 배웅했던 동포들을 다시 인천에서 마중해 온 인천 사람들의 덕목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민족 특유의 성실함과 교육열을 기반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다. 그 저변에 재외동포의 모국을 향한 애국심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 자금을 마련했던 동포들은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모국에 구호 물품을 보내줬다. 또 대한민국의 성장을 위해 해외공관을 마련해 주었으며, 경제개발을 꿈꾸는 모국에 온 마음을 보탰다. 재외동포의 공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천은 동포들과 어우러져 있다. 사할린 한인 4346명이 국내에 둥지를 틀 때, 인천은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을 열었다. 남동구 논현동과 부평구 삼산동 등에 가장 많은 영주귀국자를 끌어안았다. 연수구 함박마을에는 1만 명에 달하는 재러·재CIS(중국 및 구소련 지역)동포들이 지역주민들과 상생하고 있다. 송도신도시에 글로벌시티가 조성되고 모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동포들을 품에 안았다.

근대화·산업화를 선도하며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도시로 성장한 인천은 이제 재외동포청이 들어서면서 인구 1000만의 시대를 열고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동포들은 인천에 첫발을 디디면서 모국의 문을 열고, 다시 인천의 땅을 밟고 거주국으로 되돌아간다.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인천에서 꿈꾸며, 모국에서의 '코리안 드림'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인천이다. 다양한 인프라와 공간 확장성을 갖춘 인천은 항상 그래왔듯이 동포를 배웅하고 맞이하면서 재외동포청은 물론 동포들과 함께 상생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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