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원 / 수필가

국어, 한국어, 둘 다 대한민국의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조금 다른 뜻일 때도 있다. 필자가 친구를 통해 그 차이를 알게 된 것이 대략 4년 전이다. 그 당시 고교 국어교사에서 명예퇴직한 친구가 이제는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30여 년을 국어를 가르쳐 왔는데 무슨 한국어 공부를 다시 하느냐고 물으니 난감한 표정으로 국어는 한국인이 배우는 것이고 한국어는 외국인이 배우는 거라고 했다. 그게 뭐가 다른 거지? 하고 벙벙한 생각 속에 있는데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다시 말해, 한국인을 가르치면 국어 교육이고 외국인을 가르치는 것이 한국어 교육인데 전혀 다르고 별도의 자격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본인도 사이버대에 편입해서 공부하고 있다며 필자에게도 적극 권유했다. 한류 붐으로 온 세계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도 많고 우리나라에도 이미 250만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으니 퇴직 후에 좋은 일(Job)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 좋은 방법이구나 생각하고 사이버대 한국어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막상 등록하고 개강하자 엄청난 학습량이 쏟아졌다. 수강은 기본이고 틈틈이 참여해야 하는 퀴즈시험, 토론, 리포트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줄줄이 밀려왔다. 같이 공부하는 재학생들의 카톡방과 밴드에도 매일 '머리에 쥐가 난다' '너무 힘들다'는 글이 가득했다. 필자는 서울의 한 마이스터고 교장이었는데 바쁜 일과 후 바로 귀가해서 온라인 주경야독의 고생을 이어나갔다. 코로나19로 사람을 만나거나 회식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퇴직 후 '일'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힘을 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 한국어 교사가 넘쳐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레드오션인데 한국어학당 등 공석이 생겨도, 젊고 유능한 (여?)교사가 선호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속았다. 졸업해도 쓸모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2년 동안 강행군하며 얻은 것이 너무 많다. 한국어 문법, 어휘, 발음 등 공부할수록 그 오묘한 깊이에 매료돼 우리말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깨닫고 세종대왕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일자리는 양보(?)하는 대신, 한국어 교육 봉사단체에 가입했다. 외국인과 일대일(또는 일대이삼)로 일주일에 1회 1시간씩 온라인(Zoom) 무료 한국어 강의가 기본이다. 3년 가까이 국내에 사는 미국인 영어교사, 중남미 공학 박사를 거쳐 지금은 일본에 사는 일본인 기업 임원을 가르치고 있다.

생각보다 일주일이 빨리 돌아오고 쉬고 싶은 피곤한 날도 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오늘도 흐뭇한 마음으로 PC를 켠다. 나이 예순을 넘으면 받아온 것을 조금씩 나누면서 보람을 갖는 게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다.

살다 보면, 속았지만(?) 보람으로 남는 일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