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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무타시 징용 위령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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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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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 도쿄 특파원

   
 

“내가 말입니다. 한국어는 서투른데…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우판근(85)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후쿠오카(福岡)현 오무타(大牟田) 지부 지단장이다. 일본서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동포로, 거제도에 살다 네 살 때 일본으로 가족들과 건너왔다. 고등학교 3학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면접까지 잘 치르고 돌아와, 되겠거니 싶었지만 결론은 낙방. 조선인이라서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낙방 소식을 전하는 그를 일본인 담임 선생님이 끌어안았다. “지지 마라. 이런 것들에 절대 져선 안 된다.”

그가 20대 초반이던 어느 날, 어느 술집에서 만난 노인이 그의 삶을 바꿔놨다. 혼자 술을 마시던 어르신이 눈물을 흘렸다. 함께 탄광에 끌려왔던 동료가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거였다. 집에 돌아와도 잊히질 않았다. 징용공들의 유골은 어디에 있는 건가. 이들은 어디에서 왔나.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50대가 되면서 민단 간부가 되곤, 위령비를 세워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탄광회사들 명부를 찾고, 당시 한국 ‘면사무소’에 연락해 희생자들의 흔적을 따라갔다. 10년이 걸린 조사 끝, 징용노동자들이 일했던 회사 세 곳과 협상을 시작했다.

   
▲ 지난달 21일 일본 후쿠오카 현 오무타시 아마기 공원에 있는 징용희생자 위령비를 찾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 [사진 주일 한국대사관]

안될 것 같던 일이 기적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위령비는 징용노동자 대부분의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만들어서 보내기로 했다. 위령비가 들어설 부지는 오무타시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미쓰이 석탄광업, 미쓰이 동압화학, 전기화학공업 등 기업 세 곳이 건립비를 내기로 했다.

1995년 오무타시 아마기 공원에 세워진 위령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비문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땅에 강제로 징용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모식도 매년 열기 시작했는데, 시장과 지역 의원, 기업들이 모두 빠짐없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우 지단장은 “한·일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추모식을 거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곳을 찾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진정한 화해의 상징”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은 파트너”란 3·1절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은 이 발언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란 말을 반복했지만 일부 언론에선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해 ‘일본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설까지 실었다. 인구 10만6000여 명의 작은 도시 오무타도 지난 28년간 이어가고 있는 이 화해를 일본 정부가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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