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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치적인 월드컵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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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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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 국제부장

   
 

이번 월드컵만큼 선수들의 정치적 제스처가 많은 대회를 보지 못했다. 이란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21일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어깨동무를 하고 침묵했다. 자국에서 두 달 넘게 진행 중인 반정부 시위에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상대인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은 바로 몇 분 뒤,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들은 2020년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 단속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 이후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표시로 무릎 꿇기를 하고 있다. 이날의 퍼포먼스도 비슷한 취지였지만 상대가 이란인 만큼 이란 정부의 시위 탄압에 대한 반대 의견 표시로도 이해됐다. 선수들은 25일 2차전인 미국과의 경기 직전에도 2~3초간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했다. 웨일스와의 29일 3차전에선 두 팀 선수 모두 무릎을 꿇었다.

축구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는 대회 개막 전부터 있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호주 대표팀 선수 16명이 개최국 카타르의 인권 탄압에 차례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카타르가 월드컵 관련 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숨진 일을 문제 삼았다. 호주축구협회도 “월드컵이 일부 이주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이들의 권리를 대변할 이주노동자센터의 설립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는 경기를 보는 관중과 시청자에게 불편한 일이다. 스포츠의 순기능은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다. 관중은 승리를 위해 땀 흘리는 선수와 공감하면서 현실의 무게를 잊는다. 이런 무대에 거꾸로 긴장을 높이는 행위가 등장하는 건 반갑지 않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 경기는 더 큰 긴장 해소의 장이다. 이념과 종교, 문화가 다른 나라도 국제 경기를 통해 대화,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는 스포츠 외교를 한다.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는 서구에서도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한 설문조사를 보면 영국 축구팬의 54%가 선수들의 ‘무릎 꿇기’를 지지했지만 39%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스포츠의 정치화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의 개최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이 잇따르자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북한도 월드컵 개최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에 정치적 시각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선수들을 정치적 행위에 나서도록 한 이유도 생각해봐야 한다. 월드컵에 나올 정도면 대부분 적지 않은 수입을 얻는 프로 선수들이다. 굳이 비판받을 행동을 할 이유가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을 가능성도 작다. 그들의 행위는 평준화된 세상의 상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여성과 유색인종,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세계의 상식이 됐다. 그렇지만 세계 곳곳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진다. 세계인의 인권 감수성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한층 더 높아진 단계로 올라섰는데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권유린 행태가 만연하다.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가 더 많아진 것은 상식과 인권유린 사이 간극이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불편한 일’이 아닌 ‘심각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란 선수들은 2차전 웨일스, 3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선 국가를 따라 불렀다. 선수들은 1차전 뒤 이란 혁명수비대(IRGC) 요원들과의 회의에 소집돼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가족의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자국으로 돌아가면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란은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선수들이 끝까지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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