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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민 6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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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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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 이노베이션랩장

   
 

60년 전인 1962년 12월 18일. 제1차 브라질 이민단 103명이 부산항을 떠난다. 1962년 3월 해외이주법 제정 이후 첫 공식 이민이었다. 1960년대 초 한국은 인구 과밀과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민 정책을 폈다. 농업인구가 부족했던 브라질은 이민으로 농토를 개간하려 했다. 양국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1966년까지 4차례 더 이민단이 파견됐다. 그러나 농업이민은 실패로 돌아갔다. 배를 타고 두달여 만에 도착한 한인에게 배정된 외딴 농장엔 기반시설이 없었다. 이민자들은 제대로 된 숙소나 농기구도 없이 개미떼와 독충과 싸우며 살 곳과 끼니를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했다. 토지 소유권도 불명확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민자는 퇴역군인, 상인 출신의 중산층이었다. 이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결국 대부분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로 재이주했다.

일본 이민 1세대에게 파친코가 있었다면, 브라질 이민 1세대에는 의류산업이 있었다. 도시에서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한인 여성들은 옷가지를 파는 방문 행상에 뛰어들었다. 이민 보따리에서 꺼낸 옷은 브라질 서민들의 옷보다 질이 좋아 인기가 있었다. 1971년엔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의류업에 종사했던 기술자들이 이민자로 합류했다. 재봉틀을 몇 대 두고 봉제 하청 일을 하거나 천을 떼다 옷을 만들어 팔았다. 행상과 봉제업이 시너지를 내며 한인들은 자체 생산 및 판매망을 갖추게 됐다. 1980년대 후반 브라질 패션의 메카인 상파울루 봉헤찌로 중심부에 한인 종합의류센터가 들어선 건 상징적 사건이었다. 2010년엔 봉헤찌로 지역이 아예 한인타운으로 공식 지정됐다.

국가기록원이 2016년 펴낸 『기록으로 보는 재외 한인의 역사』 아메리카 편에 따르면 한인들은 브라질 중·고가 의류 생산의 50%를 차지하면서 브라질이 세계 패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한인 의류업 종사자는 3만여 명에 그치지만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현지 인력은 20만 명에 달했다. 브라질 이민이 성공적인 역사로 불리는 이유다. 한때 브라질 재외동포의 90%가 의류업에 종사했지만, 이제는 직업군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브라질 이민 60주년, 이민 1.5세대와 2세대들이 써 가는 새로운 성공의 역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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