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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늘을 만든 장쩌민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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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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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운 / 논설위원

   
 

장쩌민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중국 근대화 운동을 촉발시킨 5·4운동(1919년)의 영향으로 서구식 학제로 운영하는 학교들이 많이 생겨난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을 장쩌민은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 외웠다고 한다.

1926년 중국 양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 다방면에 소질이 뛰어났다. 피아노 연주가 수준급이었으며 중국 전통악기인 이호뿐 아니라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도 다룰 줄 알았다. 그의 애창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팝송부터 이탈리아 가곡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2001년 베이징에서 공연을 할 때는 무대에 올라 ‘오솔레미오’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자본주의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당과 공직에서 추방된 전력이 있던 장쩌민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지목받았을 때만 해도 장쩌민은 잠시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형 지도자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를 따르는 당내 파벌도, 혁명원로도, 군부 내 인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후 15년간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덩샤오핑이 설계한 개혁개방을 착실하게 실천하면서 중국을 환골탈태시켰다. 그는 서구식 경제를 과감히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중국 내 자본가들의 공산당 가입도 허용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올림픽 유치,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 등이 모두 그의 재임 중 이뤄졌다. 1992년 한국과 수교를 단행한 데 이어 1995년에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한국 국회에서 연설도 했다. 장쩌민은 북한 김정일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권했다. 장쩌민의 리더십 아래 중국은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불릴 만큼 국력이 커졌다. 그런 그가 96세를 일기로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한 나라의 리더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생생한 사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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