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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외교'의 함정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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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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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

어느 범위에서의 가치 추구가
국익에 부합하느냐가 핵심
정권 따라 결정이 무원칙해도
갈팡질팡해서도 곤란

   
 

한국 외교의 기반은 가치인가, 국익인가? 캐나다 외교관이 최근 북극 회의에서 만난 우리 외교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가치와 국익이 양립하기 어려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이런 질문을 했을까? 아니면 한국 외교가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느껴서였을까?

새 정부 들어 '가치외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비전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용어가 등장한 것 같은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구호인지는 분명치 않다. '실용외교'에 반대되는 개념인 듯하지만 둘 다 정치적 수사나 저널리즘적 용어라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도 뚜렷하지 않다. 실용외교가 가치를 배제하고 국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라면 가치외교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국익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정도로 얼핏 읽힌다. 모두 가치와 국익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걸 전제로 한 주장인데 과연 그런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의 지배 등 우리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는 의심할 바 없이 국익과 합치한다. 외교도 당연히 헌법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외교현장에서 그것이 위협받을 때는 단호히 지켜내야 한다. 가치가 국가안보를 지켜주거나 지속적 번영을 담보해주지는 않지만 이는 외교 현실이나 지정학적 환경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지 가치와 국익이 충돌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가 일상화된 외교에서 가치는 국익 실현에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는 말이다.

외교에서 가치와 국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가 외교 현실과 충돌할 때 어떤 수준과 범위에서 가치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느냐의 문제다. 지난달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 토론을 위한 유엔 인권위 결정에 우리가 찬성 투표한 것은 한중관계에 미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다자외교 맥락에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 등 과거사 인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 안보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안보환경이 그만큼 엄중하기 때문이다. 체제, 이념이 다른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가치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는 것이 외교적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결정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나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무원칙하게 내려짐으로써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치외교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인권위 결정에 찬성해놓고 중국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50개국 공동성명에는 불참한 것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갈 지(之) 자 행보였다. 한반도 안보에 무관하다고 국제 평화에 반하는 행위에 침묵하는 것도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평화, 개발, 인권이라는 유엔의 3대 목표가 추구하는 가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원칙을 세우되 어떤 상황과 조건하에서 예외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외적 결정에 대한 대국민 설득도 어렵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도 힘들다.

가치가 종종 국익과 상충하는 개념으로 오해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가치외교가 올바른 용어 선택인지도 의심스럽다. '원칙 있는 외교'가 가치를 중시하는 새 정부 외교에 더 합당한 구호가 아닐까 싶다. '원칙 없는 외교'로 비칠 소지가 많은 실용외교의 대척점에 가치외교가 서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치외교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다. "가치로 엮어진 거미줄은 국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은 외교적 통찰이 담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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