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오늘 글의 핵심은 인류 보편성의 가치다. 무슨 뜻인가? 이해가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원칙적으로 똑 같은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피부색, 재산, 출생지, 부모의 후광과 같은 불합리한 조건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한다면 보편적 타당성에 배치된다.

좀 학자연(然)하게 말하겠다면 자유민주의 사상의 뿌리인 밴탐(j. Bentham, 1974-1832)과 밀 (J.S. Mill, 1806-1873)의 생각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말하자면 공동선(共同善)이 그것일 것이다.

그런 가치에 반하는 행위와 매너가 아주 많지만 여기서 다뤄보는 한 가지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크게 다르게 대하는 태도다. 그건 아래의 사례 하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골적 인간차별보다 덜 의도적이지만 좀더 명랑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하여는 시비해볼 만한 토픽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영미사회의 주류인 백인들은 인종차별 비난을 받기 는 해도 자기들끼리는 이 점에 있어 한국인, 더 넓게는 아시아인들보다 좀더 동질적으로 서로 느끼게 교류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보편 타당한 가치를 더 잘 지킨다는 이야기가 된다.

코비드-19 사태 때문에 한국을 벌써 3년째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전에 갈 때마다 나는 놀기보다 고국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 유심히 관찰하는 시간을 더보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례가 이 글의 제목대로이다.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하다

서울의 그런대로 번화한 지역의 중류급 호텔이다. 사람들이 유리 회전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게 모두 보인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들어올 때는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당연히 문을 붙잡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데 그 확률은 50대 50(Fifty-Fifty)다.

문만 열고 그냥 나가 버리는 사람을 굳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서 있거나 심지어 들어다 준다면 어색하게 보이는 문화 탓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남이어서 모른 척하는 게 정상이고,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 비정상으로 보이는 문화다. 친한 친구나 평소 낯익은 사람이라면 딴판이다. 문을 잡아 주고 들어다 주는 건 물론, 반가운 인사와 수다가 따른다. 잘 아는 ‘우리’와 모르는 타자(他者)를 크게 구별하는 건 우리 문화의 특징이다.

그건 어디에서나 같으나 백인들은 이 점에서 우리와 좀 다르다. 구면, 초면 가리지 않고, 도울 일이 있으면 매우 협조적이다. 보편적 인간 가치를 실천하는 데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국에서 오래 산 한 미국인이 한 말이란다. 한국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What do you know보다 Who do you know)”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는 데 맞는 관찰이다. 초면에도 누군가가 서로가 같이 잘 아는 친구라든가, 누구 저명인과 친척이거나 가깝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대접이 금새 달라진다. 이 또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간 낯가림 문화의 단면이다.

불과 몇년 전이다. 서울 근교의 한 수영장에 실버 전용 시간에 갔었다. 노인들은 아이들처럼 서로 물장난도 칠 정도로 서로 절친한 인근 토박이 주민들인 게 분명했다, 내가 웬 낯선 사람인가 싶었던지, 백인사회에서라면 ‘하이’ 정도 한마디 아니면 따뜻한 눈짓을 보낼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련만 아니다. 이것저것 초보자로서 당연한 실수를 지적하는데 급급할 뿐이다.

패거리 문화

그런데 내가 테레비젼 화면에 가끔 뜨는 저명인사였다면 어땠을까. 상황은 크게 바뀔 것이다. 이것도 보편타당성이 결여되는 행위다.

해외 한인 학자와 전문인을 초청해서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세미나에 두어 번 참가한 경험이 있다. 며칠간 같은 호텔이나 숙소에 묵는 동안 서로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 그들은 커피 한잔 마시러 아래층 라운지로 내려가는 데도 알던 사람들끼리 따로다.

내가 아는 한 젊은 기자는 새로 창간한 언론사에 자리를 옮겼는데 한동안 부장은 자기가 데려온 부원들과만 점심을 먹으로 나가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와 사회에 패거리 문화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여기 호주에 사는 우리 한인들도 해외 나와 살아도 매너와 에티켓은 고국지향적이다. 한 테이불에 앉아서도 아는 사람끼리는 반갑다고 야단이면서 옆에 있는 모르는 사람은 서로 인사도 안 시키거나 말도 걸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병원 리셉션의 여비서도 환자라면 똑 같이 대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사례를 흔하게 보게 된다.

이런 말을 한다면 서로 다른 민족 또는 문화간 차이를 논하는 문화비교론이 되는 것이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든 같은 인간이라 공통된 점도 있겠고, 예외도 있을 것이니 영미인들은 안 그러냐는 반박을 들을 수 있음을 잘 안다. 또 왜 사람이 왜 그렇게 까다롭냐와 같은 핀잔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적과 비평이 있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