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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해야 하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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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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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 김대중학술원장

   
 

우리는 바로 이웃과 싸우고 불신하면서도 일상생활에 파묻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지만, 상대방이 계속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어서 언제 또 나에게 해코지를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방치해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가 악화되기 십상이고, 이웃과 접촉과 대화가 끊어져 있어서 상대방이 어떤 심리와 이유로 내게 언제 어떤 식으로 어떤 위협을 가할지 알 수가 없다.

요새 남북관계를 위의 경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강화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협이 고통스럽고 화가 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군사적 대결, 그것도 핵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정책 일변도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위기 상황의 지속적인 방치도 답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요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대화와 협상의 상대자인 북한을 믿을 수 없으며, 북한과 대화와 협상이 이뤄진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괜히 시간 낭비할 것 없이 이쯤해서 북한 비핵화 노력을 접고, 우리가 아예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악화되어 온 데 대한 우리 국민의 좌절과 분노가 그러한 믿음과 주장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핵화 포기론과 자체 핵무장론이 과연 합당하고 또 장기적으로 우리 자신과 후손을 위해 좋은 선택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주장은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더구나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답을 미리 갖고 있다. 따라서 아예 대화와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가능성’ 여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필수성’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어떻게든지 우리 자신과 후손을 위해 한반도 문제 이해 당사국들, 특히 북·미 양국이 평화공존의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그 바탕 위에서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 관계정상화, 경제·사회·문화 교류 협력 등을 성취해 내도록 설득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지난 30여년간의 북핵 협상의 내용을 보면, 북한은 ‘비핵화’(한반도 비핵화)의 교환 조건으로서 ‘평화공존,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 관계정상화,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상호 연계성과 연동성을 갖고 있어서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국이 과연 북한과 평화공존의 결단을 내릴 것인가? 그리고 북한이 비핵화의 교환 조건으로 요구하는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 관계정상화, 경제제재 해제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되어 있다. 사실상 동전의 앞뒤에 해당하는 문제들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제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6·25전쟁의 종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염원과 노력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떤 정책이든지 당장 아무리 속 시원하고, 또 성공적으로 보이더라도 나중에 국익에 해를 끼친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정책인 것이다. 바로 국가지도자도 국민도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의 한반도 평화정착의 염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쯤 다시 북한과 대화와 협상할 때가 올 것인가? 역사를 단기적으로 보면, 평화체제 수립과 북핵문제 해결의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협상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다. 한반도 관련국들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서의 변화도 생겨나기 마련이고, 국제정치 상황도 변하는 법이다. 북한은 소련 붕괴 직후부터 소련이 떠난 자리에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대항력으로 사용하는 ‘균형전략’을 추구해 왔고, 그것을 이행하려는 시도를 최근 2018년 싱가포르 북·미 합의까지 대여섯 차례 해왔다. 미국도 자신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나중에 북·미 협상이 재개될 때 미국이 북한이 요구할 최소치의 핵억제력 보유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시 미국의 국익에 대한 계산과 협상의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점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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