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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 떠난 한국인 부모-호주의 사례-
김삼오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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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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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한참 된 이야기다. 한국의 대기업 사장 P씨가 시드니 공항에 내려 입국 절차를 밟는 동안 짐을 샅샅이 뒤지는 세관원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어 그 자리에서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사건이 호주의 주요 신문인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대서특필됐다. 영미 언론은 이런 기사를 즐겨 보도한다.

외교 라인을 거쳐 사전 조처를 취했더라면 그는 VIP 예우를 받아 편하게 특별 창구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실세 저명인사고 호주의 큰 수입선인 대기업의 회장인지라 말 안 해도 그렇게 될 것으로 여겼던 듯 그냥 들어 온 게 화근이었다.

영미국가의 세관과 사정 공무원들은 우리와 다르다. 국내인 외국인을 막론, 상대의 직위에 구애되지 않고 주어진 권한을 그대로 행사한다.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많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한국의 몇 인사들의 평은 엉뚱했다. 그가 콧대 높은 ‘호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왔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보는 양 지역 간 웃지 못 할 인식의 차이였다.

내가 시드니의 한호 기업인 단체의 간행물인 한 뉴스레터의 편집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간행물의 제작자 명단 난 아래쪽에 양측 임원들의 이름을 자문위원 자격으로 넣었었다. 호주 측 기업인으로부터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한국 국영기업체의 현지 법인장 한 사람은 노발대발이었다. 그가 보기에 업자들인 이들과 함께 명단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게 불만이었다.

아줌마와 여사

세계에서 2등가라면 서운해 할 한국인의 강한 직위의식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호주인 학자 말인데, 자기가 아는 한국인 교수가 고국으로 돌아간 이유가 자녀들이 노동자 가정 아이들과 섞여 노는 게 싫어서라고 말했단다. 물론 기가 막힌다는 말투다.

호주에는 부자와 고액 연봉의 고급 전문인들이 많이 모인 비싼 지역이 있으나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할 것 없이 어디에나 미장이, 트럭 운전기사, 전기공, 공장 노동자, 청소부, 소상인들이 섞여 사는데 밖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다. 이 블루컬러들의 돈벌이가 장·차관이나 교수 못지않은 호화 주택, 자동차와 심지어 요트를 가지고 사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아이들끼리 노는데 부모 직업을 따라 따로 노는 것은 잘 못 본다.

강한 직위 의식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의 관행은 아직도 수두룩하다. 비근한 예가 존칭 사용법이다. 이 회장님, 이 총장님, 이 장군님, 이 과장님, 이 선생님으로부터 님을 빼고 직함만 부르는 방법, 할아버지, 이 선생, 미스터 이, 이 과장, 이 원장, 이 아무개씨, 이 선배, 형씨, 아저씨, 당신 등 천차만별이다. 여성이라면 여사님, 사모님, 선생님, 미세스 아무개, 아무개씨로부터 아무개 엄마, 할머니, 아줌마 등이 있다. 그저 호칭일 뿐인데 이렇게 차이를 두는 기준은 무엇인가? 신분과 돈과 필요가 아니겠는가.

영어로 사망하다는 Died 아니면 Passed away다. 한국은 사망하다, 작고하다, 별세하다로부터 타계하다, 운명하다, 소천하다, 열반하다, 서거하다 등 수십 개의 동의어가 가능하다. 어느 때 상대를 깍듯이 높여 또는 반대로 멋대로 부르는가? 나이 말고는 직위와 돈, 그게 주는 힘과 이른바 명망이다. 미스터가 어때서 하고 반문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게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봐야 한다. 이건 언어가 아니라 인간차별의 문제다.

환경미화원으로 나선 신부

혹자 왈 한국도 이제는 다르다고? 얼마 전 한국의 언론 매체에 길게 난 어느 가톨릭 신부의 경험담을 인용해 보자. 직위가 낮은 사람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가 주제였다. 그는 자청해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하루를 보내면서 닥치는 대로 만나게 된 사람들로부터 겪은 신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멸시를 겪었다는 것이다. 인권이니 ‘남을 배려하는 사회’와 같은 말은 그저 립 서비스(Lip service)인 게 틀림없다.

영미사회, 특히 호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살아 보면 얼른 안다. 작은 지하철역에서는 역장이 변소 청소를 맡아 하고, 잘 생긴 백인 남자들이 식당, 기차 칸, 큰 빌딩 안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는 건 예사다. 교회에서 점심 후 백인 목사가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하는 걸 가끔 보게 된다. 실직한 백인 워킹맘이 파출부로 나서는 것도 대수가 아니다. 죽지 못해 한다고 한탄하는 사람 못 봤다(물론 이런 3D 잡일은 이민자가 거의 독점하고 있기는 하나). 직위 중심 사회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회 풍토에 얼른 적응하는 게 한국인으로서 쉽지 않다. 나 자신도 고국에서 몸에 밴 직위의식 때문에 호주에 처음 와 바보짓을 많이 했다. 공부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쇼핑센터에서 물건 운반, 진열 등 가벼운 노동인데 체면 때문에 못하고 말았다. 내가 과거 어떻게 지낸 사람인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의 현지 정착이 늦어지는 이유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정치는 조폭의 막말 싸움 수준으로 퇴보한 한국의 정치판을 고치는 방법은 한국인의 강한 직위의식의 탈피라고 보는 평소의 필자의 신념 때문이다. 예외가 있겠으나 한국에서 높은 자리는 입만 움직이면서 돈 벌고 편히 사는 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관운이라고 부러워하며 명예로 친다.

그러니 조금 똑똑하고 능력 있는 자는 그 자리를 향하여, 이미 차지 한 자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하여 어떤 하수인 노릇도 마다 하지 않으니 정치와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 가겠는가. 정의는 실종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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