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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연방의 군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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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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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 논설위원

   
▲ 196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신생 독립국으로서 영연방을 벗어나 소련에 다가가는 가나를 방문했다. 여왕은 은크루마 대통령에게 댄스를 제의했고, 과거 군주와 신민이었던 두 사람의 댄스는 세계의 화제가 됐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영국과 옛 식민지 국가들로 구성된 ‘영연방(英聯邦)’의 존재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존심이 있다면 식민지 잔재를 하나라도 더 지워버려야 정상 아닌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아픈 기억이 없을 리 없다.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인도와 케냐처럼 학살을 겪은 나라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옛 식민지가 독립 후에도 연방을 유지하면서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모잠비크나 르완다처럼 영국이 아닌 다른 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도 스스로 영연방에 들어왔다.

   
▲ 선우정 논설위원 

한국·일본·중국에서 편의상 부르는 ‘영연방’은 사실 잘못된 명칭이다. 공식 이름(국가 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에서 ‘영국(British)’을 삭제한 지 오래다. 동아시아 연방국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선 ‘공화 연방’이라고 부른다. 식민지 독립 후 연방 유지를 위해 지배국의 색채를 최대한 뺀 결과인데 국왕에 대해선 좀 달랐다. 영국 국왕은 여전히 연방의 원수다. 56개 연방국 중 식민지 역사의 맥락이 다른 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카리브해 국가 등 14개 나라는 지금도 영국 국왕을 자국의 왕으로 섬긴다.

영연방과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가 1961년 아프리카 가나 방문 때의 사진이다. 서른다섯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나의 초대 대통령과 얼싸안고 춤을 추고 있다. 흑백의 대조가 선명하다. 16년 전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아버지 조지 6세는 식민 당국의 인종차별 때문에 백인하고만 악수할 수 있었다. 당시 남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엘리자베스는 “영국과 영연방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영국은 여왕의 방문에 힘입어 독립 직후 소련으로 기울던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을 연방에 묶어뒀다.

물론 이익이 뒷받침한 이유가 컸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은 쇠락하고 있었으나 유럽 최대 공업국이었고 세계 무역의 10% 가까이 차지했다. 갓 독립한 나라들은 연방국에 부여된 무역, 이주, 노동 등 특권이 필요했다.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처럼 신흥 패권국인 미국의 전폭적이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옛 종주국 영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들어가면서 특권을 폐지했을 때 가입국이 “영국이 우리를 버렸다”며 아우성친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왕실의 구심력이 없었다면 특권이 사라진 이후 연방은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선량한 식민 지배란 없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던 영국이야말로 미국, 아프리카, 중국 등 세계 전역에서 수백년 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영국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수십년에 불과한 일본보다도 피지배 국가들로부터 비난받지 않는다. 많은 나라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제국 영국이 이식한 크리켓을 국민 스포츠로 즐긴다. 몇몇 나라 국민은 영국 국왕의 얼굴이 실린 지폐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국이란 나라의 그릇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그 그릇을 키운 존재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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