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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중국 조선족 살리는 법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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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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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에는 한국 음식점이 밀집돼 있고 한국어로 된 간판도 즐비하다. 한·중관계의 냉각기를 거치며 숫자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교민들이 이곳에 모여 산다. 왕징에는 한국 국적의 교민들 이외에 한인 커뮤니티를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동포들이다. 그들은 주로 한인들을 상대로 슈퍼마켓, 식당 등을 운영하거나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교민들과 얽혀 산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거나 개인사업을 하며 이래저래 한·중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도 많다.

조선족들은 중국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는 간혹 충돌도 발생한다. 요즘 조선족 기성세대는 대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자녀세대가 우리 말과 글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 정체성의 위기다.

그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째가 중국의 소수민족 동화 정책이다.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과 국가 통합 등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소수민족 통합 정책을 편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앞세우는 것이 중국 표준어(보통화) 교육 확대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2035년까지 보통화 사용을 전면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면서 “언어와 문자는 국가 통합의 중요한 버팀목”이라며 “통용 언어와 문자 보급에 중점을 둬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으로 살아갈 자녀세대에 무턱대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라고 강요만 할 수도 없고 민족 정체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게 기성세대의 고민이다.

조선족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은 인구 감소다. 2000년 192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20여년 새 22만명 이상이 줄어 170만명대로 내려앉았다. 인구 자체가 감소한 상황에서 과거 주로 동북3성에 모여 살던 조선족 상당수가 중국 내 각 지역과 해외로 흩어지면서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이 같은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중국 내 유일한 조선족 자치지역인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다. 옌볜자치주는 지난달 ‘조선 언어문자 공작조례 실시세칙’을 공포했다. 한글 중심의 문자 표기를 중국어 우선으로 바꾸는 게 골자다. 세칙 시행 후 옌볜에서는 한글만 표기했거나 한글을 우선 표기한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중국 내 조선족들은 이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언젠가 말과 글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952년 자치주 성립 초기 70%를 넘어섰던 옌볜 내 조선족 인구 비중은 30.8%까지 떨어졌다. 규정에 따라 인구 비중이 30% 아래로 내려가면 자치주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터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지난 3일 성립 7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옌볜을 떠난 조선족 상당수가 한국에 정착했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차별과 혐오를 경험한다. 양쪽에서 모두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들을 중국인이라고 싸잡아 구별짓기보다 민족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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