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 / 기자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최근 잭슨홀 연설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물가 잡기 전까진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올해 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 등을 구사하면서 1994년 이후 가장 센 금리 인상을 했는데, 그 속도를 당분간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월의 말 뒤에 ‘강(强)달러’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걸 멈추지 않겠다는 숨겨진 메시지도 읽어야 한다.

▲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지난달 26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플레이션이 2%에 도달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AP 연합뉴스]

미국은 지금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은 저임금으로 만든 값싼 공산품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수출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강달러’가 인플레이션 수출의 무기다. ‘제1의 기축 통화’라는 달러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 방현철 기자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무역의 절반 가까이는 달러로 거래하고 있다. 특히 원유 거래에서 달러로 사고파는 건 절대적이다. 그래서 ‘페트로(석유) 달러’란 말까지 있다. 원유 수입국은 달러로 표시한 원유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것에 더해 달러 강세까지 겹쳐서 ‘웃돈’을 주고 수입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 보니 강달러로 인해 각국 수입 물가가 오르고,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한국의 작년 전체 수입 중 달러 표시 거래는 80.1%에 달한다.

반면 강달러는 미국 내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준다. 미국은 같은 달러를 주고도 살 수 있는 해외 물건이 늘어난다. 그만큼 미국 내 물가는 떨어진다. 클리블랜드연방은행 분석에 따르면, 미국 달러 가치가 1% 높아지면 원유를 뺀 수입 물가는 0.3% 낮아진다고 한다. 이미 연초 이후 달러 가치는 10% 넘게 올랐다.

‘인플레이션 잡기’에 올인하는 미국은 강달러를 즐기고 있다. 제러드 번스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은 7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달러에 관심이 아주 많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걱정될 때 달러 강세는 수입품의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하기도 했다.

강달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잡기엔 도움이 되지만, 세계 각국은 달러발(發) 인플레이션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입해야 한다. 이를 방어하려면 미국처럼 금리를 인상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도 없다. 그러나 고금리는 경기를 망가뜨리고 잘못하면 부채 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있어 미국을 따라 금리 올리기가 쉽지 않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뜩이나 침체 우려가 큰데도 미국의 ‘빅 스텝’을 따라 했다. 하지만 침체 불안이 퍼지면서 한때 ‘1유로=1달러’ 선이 깨졌고 유로는 20년 만에 최약세를 보였다.

과거 강달러 시기처럼 경제 체력이 약한 나라들은 고물가, 고금리에 나가 떨어질 수 있다. 이미 스리랑카, 파키스탄, 이집트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에 불안감이 커지면 안전자산인 달러는 오히려 더 강해진다. 미국에선 호황일 때나 위기일 때나 양 극단에서 모두 강달러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를 웃을 때 양쪽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에 비유해 ‘달러 스마일’이라 부른다. 미국으로선 손해 보는 게임이 아니란 얘기다.

한국은 미국과 금리 차가 너무 커지지 않는 수준에서 금리를 올리는 한편, 투기 세력의 타깃이 되지 않게 경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게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위기 안전망인 ‘달러스와프’를 한국을 비롯해 호주, 멕시코, 브라질, 싱가포르 등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미국이 글로벌 시장 안정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