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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직도 눈치가 빨라야 하는 사회일까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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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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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Kibun(기분)과 Nunchi(눈치).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아듣는 한국말이다. 왜 굳이 영어가 먼저인가? 한국통(通)으로 잘 알려졌던 한 미국인 선교사이며 의사가 일찍이 그의 저서 <Korean Patterns, 필자 번역, 한국인의 행동양식-초판, 1967>에서 한국인의 한 가지 행태적 특징으로 이러한 심리 기조와 매너를 자세히 다뤘고, 그게 한국인을 이해하려는 외국인들 가운데 자주 인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전주예수병원의 7대 원장을 지낸 폴 크레인(P. Crane) 박사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와 이 병원을 조금 소개해 보고 싶다. 이 병원은 적어도 1960년대까지 전라북도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이었다. 병원은 1898년 미국 남장로교계의 의료 선교로 시작된 것으로 1세기를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순전히 우연인데 60년대에 나는 거기를 두 번 방문했었다. 한국 공군의 일원으로서 군산 비행장에서 근무할 때 거기 주둔한 미군 기독교 모임에 섞여서 한번, 그후 미국무성 소속 원조 기관인 유솜(USOM) 직원으로 미국인 상사와 함께 방문한 바 있어 당시 시내를 굽어보는 산언덕에 위치한 서양식 병원 건물과 미국인 직원들의 생활상을 잘 기억한다.

1세대 한인들이 기억하는 크레인 박사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방한한 미국의 존슨 대통령(1963~69년 재임) 연설 통역으로 차출된 이 미 육군 예비역 소령이 6.25가 터져 ‘인민군이 밀고 내려올 때’라고 옮겨야 할 대통령의 말을 ‘내려오실 때’로 잘못 옮긴 게 라디오 중계로 전국에 퍼져 나가 코미디가 된 바로 장본인이다.

반생을 한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어가 유창하다고 알려져 통역을 맡은 것이나 그만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 농민들과 오랜 교류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한 통찰만큼은 남달랐었다. <Korean Patterns>는 물론 그걸 재치 있게 집약한 책이다. 그 가운데 한국인의 기분과 눈치에 대한 묘사는 압권이다.

한국인은 기분에 살고 죽기 때문에 출세하자면 상대방, 특히 윗사람의 기분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 특유의 눈치를 갖게 되었다는 게 요점이다. 한국에서 어려운 시절 눈치로 먹고 산 1세들, 관 지향적 출세형은 이걸 누구 보다 잘 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니 각료 하나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며 기분을 맞추었다는 일화는 코믹한 눈치와 기분의 사례로 지금도 잘 거론되곤 한다. 양자는 물론 동전의 양면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권력에 잘못 보여 화를 입거나 어떻게 든 손해를 보던 전근대적 왕실 정치나 봉건주의 사회가 그 시발이었다고 생각된다. 빈곤한 농민은 힘센 관리나 지주 앞에서 당당하게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평균적 한국인들은 관(官)이나 강자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걸 볼 수 있다. 노조의 힘이 강한 일부 국영기업체나 대기업이 아니고 조용히 있으면 차관, 국장 진급이 보장된 관청이나 영세 기업에서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눈치는 역시 절대적이다.

괘씸죄

한국에서 오래 살았거나 한국의 조직 문화를 지켜본 외국인들의 말인데 귀담아들을 만하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상사를 대할 때 말은 잘 안 하고 웃기만 한단다. 왜 그럴까? 자칫 말을 잘 못해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일단 웃으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크게 실수는 면할 수 있고 본전은 찾는 것이다. 이 경우 눈치는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며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이다.

나는 한동안 한국에 나가 일할 때 동료들이 곧잘 우스개로 쓰는 ‘괘씸죄’라는 말이 참 실감 났었다. 약자가 강자를 잘 알아서 모시지 못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괘씸죄에 걸려 될 일도 안 된다는 말이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아둔한 한국이라면 출세는 일찍 접고 이민으로라도 떠나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대안은 분명하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능력과 힘으로 일하고 노력하면 누구든 먹고 살 수 있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백인사회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2, 3세 자녀들은 부모들 세대의 약삭빠른 눈치를 모른다. 이 또한 해외 한인 세대 간 일어나는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다. 미국이나 영국 아이들에게 과자를 권했을 때 좋다면 곧바로 “Thank you(예, 고맙습니다).”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널름 받아먹으면 눈치가 없거나 당돌한 아이다. “괜찮아요.” 하고 1차 사양해야 한다. 잘한다고 하면 “뭘요. 아닙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식사 자리에서도 어른보다 먼저 설치면 안 된다. 2세, 3세들 가운데 이걸 비교적 잘하는 아이와 전혀 못 하는 아이가 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또는 착하다고 남이 극찬하면 “아니에요. 그 애는 미련해요.” 또는 “망나니입니다.”와 같이 대답을 해야 눈치가 있고 겸손한 부모다.

VIP와 볼일 없는 사람

상대의 기분을 살려 주는 비법 하나는 그가 ‘중요한 사람(Important person)’이라고 느끼게 대접하는 것이다. 그 반대는 물론 상대를 별 볼 일 없게 대하는 것이다. 그때 상대의 기분은 나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분은 한국인에게만 특유한 속성은 아니다. 백인도 똑같은 인간이다. 영어에도 상대를 올려 주어 기분 좋게 해 준다는 말이 있다. 예컨대 “She makes her husband feel important.”를 직역하면 “그녀는 남편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가 된다. 백인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비서는 그런 눈치와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다.

실은 ‘아주 중요한 인물’을 의미하는 ‘VIP(Very important person)’이란 말은 영미사회에서 나왔다. VIP Lounge, VIP Table, VIP Seat 같은 장소를 따로 만들어 고위직자, 재벌가, 돈 잘 쓰는 사람, 명사들을 일반인과는 다르게 대접해 주는 상술이다. 이게 한국의 공항, 일류 백화점, 연회장, 카지노 등 큰 영업장에 그대로 도입되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고 칭찬하는 행위를 묘사하는 영어 단어는 Flattery(동사 flatter)다, 예컨대 “He is flattered.” 하면 그는 그런 대접을 받아 기분 좋다는 뜻이다. 50년대에 나와 한국에서 잘 읽힌 책인 카네기 D. Carnegie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상대로부터 호감을 얻자면 무조건 칭찬을 하라고 했다. 이 책은 원래 인생처세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나 그 후 새로 번역되어 다른 제목으로 나왔다. 결국, 눈치와 아첨을 교육하는 책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우리말은 물론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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