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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정치적 오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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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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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 /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선 시대 쿠데타로 두 명의 임금이 왕위에서 물러났다. 연산군(재위 1494~1506)과 광해군(재위 1608~1623)이다. 물론 단종과 고종도 강제로 왕위에서 축출되었다. 하지만 단종은 12세에 즉위해서 제대로 자신의 정치를 해보지도 못했고, 고종은 열강의 각축 속에 일본의 강압에 물러났기에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은 성인으로 즉위해서 각각 12년과 15년을 재위했다. 즉 이들의 정치적 말로에는, 남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자기 몫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

‘반정’으로 물러났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일반에는 물론이고 조선 시대 전공자들에게도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연산군은 일종의 ‘악한’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는 임금으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그 행동이 시종 부적절했다. 광해군은 이와 다르다. 그에 대해 긍정적인 연구자들도 있고, 부정적인 연구자들도 있다. 각각에는 상당히 수긍할 만한 근거도 있다. 조선 시대 27인 왕들 중에서 이렇게 주의가 집중되고 또 그에 대한 평가가 상반된 임금도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상반된 입장이 조만간 하나로 정리될 것 같지도 않다.

광해군에게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쪽에서는 주로 그의 대외정책 즉 명나라와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다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큰 지지 근거가 될 듯하다. 광해군은 확실히 재위 중에 명나라와 후금 간 갈등에 말려들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7년이나 계속된 임진왜란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고, 참혹했던 전쟁을 경험한 광해군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광해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측에서는 주로 그의 국내 정책의 문제점에 주목한다. 확실히 그의 국내 정치는 우유부단했고, ‘국내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재위 기간은 임진왜란 직후였다. 서둘러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가 그런 일들에 집중했던 모습을 보기 어렵다. 흔히 그가 경기도에 최초의 대동법에 해당하는 정책을 실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것은 이원익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집요한 노력으로 이루어졌고, 더 크게는 경기도 백성들의 요구로 유지될 수 있었다.

광해군이 재위 기간에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많은 정치적 사건들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불안한 왕권은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부왕(父王) 선조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마도 선조가 몇 년 더 살았다면 광해군은 세자에서 폐해지고 말았을지 모른다. 이미 임진왜란 중에 선조는 자기 스스로 세자로 지명했던 아들 광해군을 정치적 경쟁자로 대하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즉위한 광해군이 자신의 권력 강화에 나섰던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대단히 현명하지 못했다. 그는 정치적 숙청과 살육을 통한 권력 강화 노력 대신에 민생안정에 힘써야 했다. 함께 임진왜란을 헤쳐온 이원익이나 이항복 같은 인물들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정치적 오판이 반정으로 이어졌다.

광해군 정권이 정치적 금도를 넘은 일들은 여러 개이지만 그중 하나가 이항복이나 이원익을 처리한 방식이다. 두 사람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임진왜란을 헤쳐온 사람들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광해군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일탈을 비판하자 두 사람을 조정에서 축출했다. 이항복은 중풍 맞은 몸으로 1월에 귀양을 떠나, 천 리를 걸어 귀양지 북청에 도착해서 사망했다. 그에 앞서 이원익 역시 69세 나이에 강원도 홍천으로 귀양을 가야 했다. 이들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많은 실력 있고 양심적인 관리와 지식인들은 광해군에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잃고서도 왕권을 지켜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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