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언론인, 본지 편집위원 ]


미주 한인 사회가 기억하는 최대 비극은 4.29 폭동 사건이다. 수많은 한인들이 어렵게 이룬 생활의 터전을 흑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한순간에 모두 잃었다.

만약 4.29 폭동 사건이 한인들의 잘못 때문에 야기되었다면 차라리 덜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 경찰이 흑인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문제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흑인들은 엉뚱하게 한인들을 대상으로 화풀이를 해댔다. 엉뚱한 불똥 때문에 한인 사회가 엄청난 화를 당한 꼴이되 버렸다. 물론 흑인 지역에서 언어 소통의 문제로 인해 흑인 지역 주민들과의 빚어온 갈등이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4.29 폭동 사건이 일어난 해가 지난 92년이었느니 18년이나 지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LA 한인 사회에서 4.29 폭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그 화제의 초점 대상으로 이민휘 씨가 거론되고 있다.

사실 이민휘 씨는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거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 LA 한인회장, 재미대한체육회 회장,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또 최근까지는 미주 한인 단체를 후원하는 목적을 앞세우며 결성한 재단의 이사장직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 같은 경력의 인물이 최근 LA한인 사회에서 구설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4.29 폭동 성금 때문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말이다.

4.29 폭동 직후 이민휘 씨는 ‘한미구호재단’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이후 한인 사회에서 모금된 성금 125만 달러 중 95만 달러를 들여 건물을 구입했다. 커뮤니티 역할을 담당할만한 건물을 후세에 남겨주겠다는 청사진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동건물을 매각했다. 그리고 남은 잔금 20만 달러 상당을 자신의 후임 이사장인 전주찬 씨에게로 넘겼다. 불과 몇 년 사이에 125만 달러의 성금이 20만 달러로 쭈그러든 것이다. 전주찬 이사장은 그나마 인계받은 이 돈마저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일부는 다단계 사기를 펼친 모 여인에게 투자사기를 당했고 남은 10여만 달러도 미래은행의 주식을 사두었는데 미래은행이 폐쇄되는 바람에 현재는 한 푼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폭동 성금이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증발을 했건만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성금을 유용 또는 착복한 사실이 없다, 모두가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건물 구입과 매각에 따른 과정에서 손실을 본 것이다.”고 이민휘 씨는 주장하고 있다.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은 느낀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씁쓸하기 그지없다.

물론 허공으로 사라진 4.29 폭동 성금에 대한 의혹을 두고 책임을 이민휘 씨에게만 묻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우선 당시 LA 한인사회의 모습부터 한번 살펴보자.

사건이후 가장 발 빠른 모습을 보인 것은 지역의 한인 메이저 언론사들이다. 그런데 성금 모금 활동에는 발 빠르게 나섰지만 모금된 돈의 행방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사까지 있을 정도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또 엄청난 성금이 각지에서 답지하자 그동안 지역 한인 사회에서 기침께나 한다는 인사들이 가세했다. 대부분이 폭동 피해와는 상관이 없는 인사들이 분명하건만 모두가 자칭 한인사회의 대표자들이다. 오죽하면 당시 미 주류 사회의 인사들의 입에서까지 “도대체 너희 한인 사회에서 진짜 대표자가 누구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당시 LA한인회가 고소사건 때문에 회장이 없이 표류 중 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우후죽순 격으로 단체가 생겨나고 대표자로 회의장이 만원사례가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생각이다. 염불보다는 잿밥 때문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도덕적인 책임을 느낀다면 최소한 한인 사회에서 퇴장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런데 이미 법적인 공소 시효도 지난 사건을 왜 들춰내느냐는 식이니 안타깝다는 말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고 역사의 기록까지도 면죄부를 줄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