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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칼럼] 친절과 따뜻함은 달라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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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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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호주에 살면서 자주 가본 다른 영미 국가들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필자는 양 지역의 문화비평 칼럼 30여 개를 써놓은 게 있다. 아래는 그 하나다. 앞으로 기회 닿는 대로 본 난에 기고해볼 생각이다.
-필자 주-

친절함과 따뜻함은 똑같다고 볼 수 없다. 친절해도 따뜻함과 푸근함이 전혀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영어로 친절은 Kindness, 따뜻함은 Warmth, 친구다움은 Friendliness, 모두 비슷한 말이지만 역시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푸근하고 따뜻함은 본래 마음속에 있는 심성이고, 친절은 대개 필요에 따른 제스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박절하게 말한다면 후자는 대개 계산적이다. 계산적이므로 상대가 누구인가와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클 수 있다.

최근 한국을 다녀오는 교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좋게 말하는 대로 주민센터와 다른 관청 민원실 직원과 일반 공무원들이 친절해져 참 편했다는 것이다. 나도 한국에 나가 보면서 그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자율보다는 위로부터의 지시가 만든 사무적인 친절이어서 그 친절은 대개 필요한 만큼이거나 일시적일 수 있다. 물론 그런 친절도 환영할 만하다.

   
 

한국의 항공기 승무원, 은행 창구 직원, 식당 종사원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친절하다. 여승무원의 경우는 승객의 무례에 대하여서도 꾹 참고 웃는 낯으로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뭉클해진다. 조직 문화 속에서 필요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면서 하는 친절이라서 노동이 아닌 인격까지 팔게 된다는 감정노동 시비가 있기도 했다. 또 누군가의 말 대로 제도화, 상품화된 친절이다.

대부분 이들은 직업 현장을 떠나 길거리나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면 평소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모른 척할 것 같다. 기내에서 보인 친절과 상냥함은 의무적이었으니 그건 오히려 당연하고 우리나 다른 나라 모두 같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영미인들 가운데도 얼음과 같이 찬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필요와 이해관계를 떠나 따뜻한 사람이 우리보다 더 많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멜빵 줄이 꼬여 있다고 뒤에서 고쳐 주는 전혀 모르는 중년 여성, 골목길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띠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 이걸 보고 딴생각이 있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거리에서 만나면 몇 마디 가벼운 소재로 상쾌한 말을 건네는 수가 많은데 마음이 차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흔한 게 날씨에 관한 것이다. “It’s a nice day.” 또는 “It’s beautiful weather.” 장마 후라면 “Its very nice to see the sun(해를 보게 되어 반갑네요).” 등이다. 그냥 지나가도 되는 데 그런다.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크게 재채기를 하면 대부분 “God bless you.” 또는 “Bless you.”다.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사람은 드물다. 옆자리에 앉게 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점잖게 말을 건다면 냉담한 사람 드물다. 모두 친절을 넘어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무렵 40여 년 전 일이다. 어느 시드니 외곽 지역 길목에서 고장 난 자동차 타이어를 바꿔 끼느라 내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지나가던 중년 백인 부부가 걱정스럽게 일이 끝날 때까지 거의 반시간을 지켜봐 주는 것이었다. 그때는 외부에 연락할 수 있는 모바일폰이 없었다.

동방지예의지국(東方之禮儀之國)

요즘 서방국가에서 그런 백인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곽 거주 지역에서 길을 물으면 집안에 들어가 지도를 가지고 나오거나(이건 많이 줄어들었다) 젊은이라면 스마트폰을 열어 따뜻하게 알려 주는 사람, 관청이나 병원 복도에서 서성거리거나 길거리에서 집을 못 찾아 헤매는 것 같으면 “괜찮으냐?”고 묻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이때 영어는 통상 “Are you okay?” 호주에서라면 보통 “Are you right?” 약해서 “You right?”이다. 더 공식적으로 묻는다면 물론 “Can I help you?”다.

예로부터 한국은 이른바 동방지예의지국(東方之禮儀之國)이었다. 예의와 친절은 서로 그리 다른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동방의 예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가치가 아니었던 게 문제다.

첫째로 외국인, 특히 백인들에게는 비굴하다 할 정도로 친절했었다. 아마도 손님을 박대하지 않는다는 과거 우리의 미풍양속에다가 선진 강대국 국민인 서양인, 그 중에서도 해방 후 우리에게 인심을 베푼 미국인을 선망하는 우리 국민의 태도가 그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끼리도 상대의 신분과 여러 가지 개인적 이유로 잘 대접해야 할 상대나 잘 아는 친지에게 대하여서라면 한국은 아직도 훌륭한 동방지예의지국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역으로 다른 많은 분야에서 한국인들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울의 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나는 시민에게 길을 물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행인도 이따금 있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뒷골목 점포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게 아니고 뭘 묻거나 말을 걸면 역시 안 하느니만 못하다.

서울 번화가의 한 약국에서 치간 칫솔을 샀었다. 주인인 여성 약사는 상냥했다. 그 후 딴 약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다시 찾아갔다. 그녀는 대학 병원에나 가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왕 말이 난 김에 몇 마디 더 물었다. 그러나 더 대화를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미국인 자신들도 “거기는 미국이 아니다.”라고 말할 만큼 뉴욕은 인심이 나쁘다. 하지만 대부분 서방 선진국의 한산한 지역은 물론, 중소도시의 쇼핑센터나 재래식 상점에 들어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어디에 가 보라고 위치를 자세히 알려 주는 주인이나 직원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현지에 오래 산 백인들이다.

서울의 지하철 상가 잡화상에 들려 안경 줄을 찾았다. 종업원이 있다면서 보여 주는 물건이 생각보다 비싸 미안하다고 점잖게 말하고 도로 놓았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영미사회에서는 제3세계 이민자가 모인 상가가 아니라면 이럴 때 간단하게 That’s okay 또는 No worry 정도는 당연하다.

불과 얼마 전 남의 심부름으로 서울의 종로 4가에 있는 보령약국을 찾아갔다. 거기는 약국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 약국에 들어가 실수로 보령약국 대신 보령제약이 어디냐고 물었다. “약국을 찾으시나요? 바로 옆집입니다.”라고 하면 될 텐데 “보령제약이요, 약국이요?” 하고 나무라듯 투명스럽게 되묻는 것이었다. 제약 공장을 찾아 종로로 왔겠는가? 아무래도 ‘별 볼일 없는’ 노인이라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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