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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문제, 현인회의로 풀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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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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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유연한 새 해법 내야 하지만
정부가 직접 하기에는 큰 부담
초당적 민간 현인회의에 맡기면
국론 수렴, 대일 협의에 최적

   
 

새 정부가 당면한 현안 중에서 한일 관계 보다 시급한 대처와 새로운 사고를 요하는 사안도 없을 것이다. 왜 시급한가 하면,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은 금세 닫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징용 판결에 따라 압류된 일본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현금화가 되면 일본이 보복 조치를 하게 되어있으므로 한국의 대응도 불가피해진다. 그러면 상황이 급전직하하여 해법을 논할 수 없게 된다. 현금화는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

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가 하면, 징용 문제를 한일 양국이 서로 양보하여 타결하자는 식의 원론적 접근으로는 풀 수 없다는 점이 이제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시종일관 한국 국내의 판결이 한일 간의 합의와 배치되니, 한국이 문제를 해소하여 국제법적 합의가 지속되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 새 정부가 새로운 사고를 하지 않으면, 징용 문제 논의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할 것이다. 지금 일본은 새 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인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니 서둘러서 원론을 넘어선 문제해결 중심의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를 풀려면 징용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두 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 첫째 현금화 과정을 멈춰 세워야 한다. 이를 방치하고 타결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성의 없게 비친다. 물론 법적 절차인 현금화를 중단시킬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찾아내야 한다. 둘째, 대법원 판결로 야기된 국내법과 국제법 간의 괴리를 극복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가 국내의 판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쪽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을 더 할 수밖에 없다.

해법과 관련해서, 지난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의식하여 일본 측에 일부 부담을 지우는 방안을 제기해 왔다. 일본은 모두 거부했다. 한편 정부 밖에서는 좀 더 유연한 방안들이 거론 되어왔다. 대표적으로 ① 한일협정 상의 분쟁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로 가는 안, ②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안, ③ 문희상 안 처럼 입법을 통하여 우리가 보상을 하는 안, ④ 일단 우리가 보상을 하고(일본의 호응 여부와는 별개로) 일본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대위변제 안 등이 있다. 모두 우리가 정치적 부담을 안더라도 해법을 찾자는 취지의 방안이다.

이 정도 방안이어야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인데, 정작 문제는 과연 정부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이다. 그동안의 우리 입장이나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새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새 정부도 지난 정부와 유사하게 일본과 부담을 나눠지자고 할 개연성이 크다. 그러면 일본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반발할 것이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딜레마 앞에 선 정부에게 해법을 찾도록 도움을 주고, 동시에 현금화 과정에 제동을 걸며, 협의 여건을 개선시킬 방안은 없는 것인가? 없지 않다. 초당적인 민간 현인회의를 운영하여 해법 도출을 의뢰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가 현인회의를 결성하고 그 해법을 따르겠다고 선언하며, 아울러 현인회의의 운영기간을 예컨대 100일로 설정하고, 그 동안 관련 당사자에게 추가 행동 자제를 협조요청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초당적인 국론 수렴 장치를 통하여 해법을 마련하는 셈이 되므로 정부의 부담이 희석될 것이다. 정부가 현인회의라는 특단의 과정을 설정하면서 각방의 자제를 요청하면, 비록 법적인 효력은 없을 지라도 사회적인 현금화 중단 압박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상 현금화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현인회의가 해법을 도출하는 동안, 외곽에서 건설적인 여론을 환기하는 작업도 있으면 좋을 것이다. 징용 배상 때문에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머문다면 국익에 손상이 가며, 그것은 이익 교량의 측면에서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담론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피해자 구제는 다른 방법으로 하고 한일 관계는 풀자는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수년 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진력해온 ‘한일 비전포럼’도 공론화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 내의 이런 움직임을 평가할 것이다. 이미 필자가 현인회의 방안을 2019년에 처음 제기한 이래, 일본 조야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바 있다. 미국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후나바시 전 아사히 주필과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부회장은 인터뷰와 기고로 호감을 표했다. 현인회의가 출범하면 한일 간 협의 분위기가 호전될 것이다. 일본의 유연한 반응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도 반길 것이다.

물론 혹자는 징용 문제에서 우리가 너무 양보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래 이 문제는 우리도 1965년 합의로 해결되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진정으로 중시 해야 할 것은 징용 문제에 붙잡힌 최악의 한일 관계를 방치하면 더 큰 국익 손상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한국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사고를 서두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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