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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사이다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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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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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홍 / 베이징연합대학 부교수

   
 

사이다가 마시는 음료수인 것은 다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이다로 답답한 상황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사람이나 행동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사이다’는 신조어로 되었고 점차 여러 곳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유행어로 부상했다.

유행어는 대부분은 단시일 존재하다가 없어지기 마련이지만 일부는 꽤 장시간 동안 사용되며 때로는 점차 그 언어 속에 정착하여 사전에 오르기도 한다. 사이다라는 유행어도 유행어치고 이젠 꽤 오래 사용되어왔다. 유행어는 누군가의 일시 기발한 언어사용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자주 그리고 널리 사용되는 것이다. 사이다라는 표현도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점점 더 넓게,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워낙 많이 듣다보니 어느 날은 정말 사이다를 마시면 답답하던 속이 뻥 뚫릴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말 덕분에 반신반의하면서 답답한 속을 뚫어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사이다를 사 마셔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결코 말처럼 가슴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사이다가 유행어로 부상한 것은 2016년쯤부터라고 한다. 가슴이 답답한 상황을 고구마에 비대여 말하면서 ‘고구마’라는 유행어가 먼저 생기고 후에 고구마를 소화시킬 수 있다고 여겨진 사이다가 그 상대어로 생긴 것 같다. 물론 탄산음료인 사이다는 마시는 순간만큼은 톡 쏘는 느낌이 있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런데 말 그대로 순간이다. 단 것이 많이 들어가 있는 사이다는 들큰한 맛에 속이 텁텁해지고 마실수록 갈증은 더 심해진다. 탄산음료이기 때문에 많이 마시면 장에 가스가 차면서 부글거린다. 그 뒤에는 방귀가 따라오기도 한다.

사이다를 컵에 부어보면 빈 컵인데도 뽀록뽀록 기포가 생긴다. 사이다에 사이다를 부어도 뽀로록뽀로록 기포가 생기고 동종류의 콜라를 첨가하면 아예 바르륵바르륵 요동을 친다. 무엇이라도 추가하기만 하면 점잖게 받아들이는 법이 없이 자기 영역을 침범 말라는 듯 파르르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사이다인데 고구마에 사이다라… 과연 잘 맞는 궁합일가? 아니, 이것은 까딱하다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는 조합이다. 순간적인 톡 쏘는 탄산의 맛에 길들여져 사이다를 많이 마시게 되면 당뇨, 고혈압, 통풍 등을 유발하게 되고 인체의 혈맥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어 다른 질병들도 찾아오게 된다.

고구마에 사이다를 곁들이지 말고 따뜻한 물을 마실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은 모든 음식과 궁합이 잘 맞아 소화와 흡수에 도움을 준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나면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대끼던 속도 차츰 가라앉는다. 적당량의 물은 인체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열을 식히는 기능을 하며 신진대사를 촉진할 수 있고 몸속의 노폐물 배출에도 도움이 된다. 아마 어떤 사람은 아무 맛도 없는 맹물을 어떻게 사이다와 비길 수 있냐고 할 것이다. 사실 물도 물 고유의 달큰한 맛이 있다. 아무 맛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이다나 콜라 등 자극성이 강한 음료에 혀가 오염되어 가장 바탕이 되는 물의 맛을 못 느낄 뿐이다. 인체는 70% 이상이 물로 구성되었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은 부단히 새로운 물로 갱신된다. 흡수하는 물이 깨끗한 물이여야만 인체 세포에 건강한 생존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니 흡수하는 물속에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있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기 자체마저도 뽀록뽀록하며 겨우 섞이는 사이다가 어떻게 인체 세포에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배타적인 사이다와 달리 물은 모든 것을 조용히 수용한다. 물에 물을 타면 원래 그대로이다. 어떠한 반응도 없이 바로 하나로 된다. 물에 사이다를 섞어도 콜라를 섞어도 물은 가만히 받아준다. 오히려 들어오는 사이다, 콜라가 내 왔노라며 뽀록뽀록하다가 결국에는 그 속에서 희석되고 만다. ‘해납백천(海纳百川)’이라는 말처럼 포용력이 강한 물은 작은 것에 반응하지 않고 오직 포용할 뿐이다. 그래서 물은 바다를 이룰 수 있다. 어떤 재질 또는 어떤 모양의 용기에 들어가도 기포를 내뿜는 사이다와 달리 물은 소리 없이 용기의 모양대로 채워주면서 자기 할일을 하는 지혜를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공자가 슬기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말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낸다. 유행어는 한 언어 사회에서 사회심리적 요인에 의해 일시적 흐름을 타는 말들로 일정한 시기 사람들의 느낌이나 생활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와 사유가 서로 영향을 주듯 새로운 언어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인간의 심리와 행동 또한 자주 사용되는 언어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유행어로 떠올라 폭넓게 쓰이면서 여기저기서 사이다, 사이다 하다 보니 사이다라는 명목을 건 말과 행동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처음 말을 만들 때 부여한 의미처럼 답답함을 뻥 뚫어주는 작용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고 많이는 음료 사이다의 작용을 하여 오히려 폐단이 되기도 한다.

사이다를 마셔보면 알겠지만 사이다는 결코 뻥 뚫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순간 콕 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쿡도 아니고 콕으로 무엇이 얼마나 시원해질까? 기대와는 달리 별로 큰 시원함이 없고 갈증만 더해가기에 더 많이 들이키는 것처럼 사이다라는 명목 하에 하는 말이나 행동들도 뭔가를 해결하여 진정 시원하게 해주지 못할뿐더러 사이다의 갈증효과에 의해 더 자주 콕콕 쏘려고 하고 점차 그것이 습관처럼 되면서 과격해지기도 한다. 결국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고 여기저기 콕콕 보이지 않는 바늘구멍을 내고 바늘구멍이 모여 더 큰 구멍이 생기며 똑같은 사이다들이 모여 서로 파르르 반응한다. 결국 음료 사이다 작용이 아닌가 싶다. 뽀록뽀록, 바르륵바르륵 하는 가관이 그려진다. 일시적으로 참지 못하여 파닥파닥하는 꼴로 되어버릴 수 있고 파닥거리다가 여기저기 염증이 생기거나 심하면 동맥경화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다를 꿀꺽꿀꺽 들이키고 나면 보통 트림이 나온다. 이것을 사이다의 소화 작용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은 소화를 시킨 것이 아니라 사이다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인체에 흡수될 수 없어 반추되어 튀어나온 결과일 뿐이다.

물은 이와 다르다. 따뜻한 물은 온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보호해주며 면역력을 높여준다. 중국어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공을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만물을 이롭게 하다 보니 만물은 물을 떠날 수가 없게 된다. 물은 염증도 씻어내고 막혔던 혈맥들도 뚫어준다. 중국어에 또 ‘심여지수(心如止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한 물처럼 평온하다는 뜻이다. 깨끗한 물이 거울처럼 만물을 비출 수 있듯이 맑은 고인 물처럼 고요한 마음에는 무엇이든지 더 환히 비쳐질 것이다.

그렇다고 물은 늘 온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물 생장의 근원이 되고 동류가 아니어도, 상처를 주는 자극적인 것도, 더러운 것도 다 받아주고 무마하고 씻어주지만 한번 노하면 그 무엇보다 무섭다. 가끔 휴가 때 배를 타고 섬관광을 갈 때면 늘 한없이 깊은 바닷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맑디맑은 물이 깊다 못해 짙은 녹색을 띠고 또 짙다 못해 검정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바닷물의 묵직한 설레임을 볼 때마다 늘 속으로 제발 요만큼만 춤추기를 빈다. 약간의 출렁임 속에서도 공포가 느껴지는데 진정 진노하여 꿈틀거리면 천층만층의 격랑이 일어날 것이고 그 뒤는 어떠할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물은 파닥이지 않고 쉽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노자의 흐르는 물과 장자의 고인물처럼 만물을 안아주고 다독여주며 자극도 더러움도 깊숙한 곳에서 희석하고 정화시켜준다.

물을 마실 때에도 일시 상쾌감을 즐겨 속을 서늘하게 하는 냉수를 마실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우리말에 ‘찬물을 끼얹다’라는 관용어가 있다. 잘되어가고 있는 일에 뛰어들어 분위기를 흐리거나 공연히 트집을 잡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차가운 물 역시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면서 길목길목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인체의 소화와 흡수에 가장 좋은 것은 체온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가령 체온보다 낮은 음료나 음식을 흡입하면 몸속의 열량을 소모하여 일정한 온도까지 올려야 한다. 그러니 차가운 것이 목을 적시는 순간만큼은 시원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관용어 뜻처럼 방해꾼이 된다. 관용어 역시 옛 선인들이 인체의 오묘함에 근거하여 잘 만들어낸 것인데 현대인들이 무지해서거나 오직 순간의 쾌감에 혹하여 생체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삼복 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보글보글 끓는 삼계탕을 맛있게 먹는다. 그러면서 시원하다고 말한다. 인체는 여름에 자연환경의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내장의 열을 밖으로 발산하여 여름일수록 내장의 열은 오히려 겨울보다 적다. 그러니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고 그것도 따뜻한 기운을 더해주는 인삼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니 몸은 상쾌할 수밖에 없다. 속 차린다면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은 설상가상인 것이다.

일시 쾌감에 빠져 자극성이 강한 사이다나 차가운 물을 마시는 대신 몸이 더 선호하는 따뜻한 물을 마셔 체내의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주는 것이 이롭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별 도움 안 되는 사이다 행위들도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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