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1.30 수 14:47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한일 갈등, 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매일경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5.0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조태열 /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

한일 현주소 양국 정치권 책임
문제 본질보다 주변 이슈 매몰
이런 접근이 근본 해결 어렵게

새정부 출범이 전환점 되려면
정치는 국경 넘어가지 말아야

   
 

하시마 탄광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2015년 한일 외교전은 고비마다 반전을 거듭하며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었던 힘겨운 한판 승부였다. 그해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 수석대표로 참석한 필자에게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위기와 좌절, 성취를 한꺼번에 경험한 잊지 못할 분쟁이기도 하다. 어렵게 합의를 이뤄 양국 정상의 재가까지 받은 협상 결과가 막판에 강제노역 관련 합의문안에 대한 왜곡 보고를 받은 일본 고위층의 오해로 물거품이 되고, 급기야는 표결 직전까지 갔다가 최종 순간에 극적으로 해법을 찾아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양국 간 불신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명분과 원칙에 입각한 국제연대가 얼마나 강력한 협상 무기인지 절감했다.

일본은 당초 WHC 위원국들의 압도적 지지를 믿고 표결로 등재를 마무리 지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강력한 맞대응 교섭을 벌이고 역사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기억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WHC 분열을 초래할 표결은 피해야 한다는 합리적 주장으로 대일 포위 전략을 구사해 승리를 확신할 수 없게 되자 마지못해 우리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7월 5일 WHC 회의에서 일본 수석대표 발언은 일본 정부가 국제회의에서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을 시인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그 발언의 문구 하나하나는 일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치열한 협상을 통해 우리가 쟁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고 WHC는 지난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런 일본이 이제 또 다른 강제노역 현장이었던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등재 신청을 미루려 했지만 한국이 시작한 '역사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압박에 등 떠밀려 등재 신청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변이 없는 한 양국은 이제 또다시 사생결단의 외교전에 나서게 될 것이다. 위안부, 강제징용 판결 문제로 이미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추락한 한일관계가 아예 어둠에 갇혀 출구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한일관계가 이 지경이 된 데는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양국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중요한 외교적 합의가 번번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휴지 조각이 되고, 갈등의 본질은 주변 이슈에 대한 논쟁에 묻혀 근원적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실종돼버렸다. 위안부 문제는 2014년 '검증'을 빙자한 일본의 고노담화 '무력화' 시도로 깨진 양국 간 신뢰가 2015년 12월 합의로 회복되는가 싶더니 소녀상 문제 등이 합의의 핵심 내용을 뒤덮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되었고, 그 결과 희생자 추모나 미래 세대 교육 등 의미 있는 양국 공동 추진 사업은 시행도 해보지 못하고 공중 분해돼버렸다. 강제징용 판결 문제 역시 사안 자체는 인권 문제지만 외교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일본 식민지배를 불법행위로 규정한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과 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반세기 이상 유지해온 1965년 한일협정체제의 불일치에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제쳐놓고 변죽만 울리며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다.

이제 엿새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한일관계의 새 출발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소모적 외교전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를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양국 모두 현상 타파를 위한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냉전 초기 대소 전략에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낸 반덴버그 미국 상원의원의 명언처럼 "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