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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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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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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대한적십자사 부회장

   
 

역사적으로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귀족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규정한 군사적 개념에 가깝다. 기원전 3세기부터 2세기까지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의 귀족들은 자발적으로 전쟁비용을 부담하고 평민보다 먼저 전장에 나갔다. 서양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이때부터 서양의 귀족은 서열상으로 평민 위에 군림하고, 기능상으로 국방 의무를 져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왕 또한 군사 원정이 계획되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참여해야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국왕의 리더십도 지킬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말할 것도 없고, 황제 등극의 명분을 쌓기 위해 군사를 소집하여 갈리아 정복 전쟁에 나선 카이사르, 유럽과 러시아 정벌에 직접 뛰어든 나폴레옹 등 군주가 전장을 누빈 역사적 사례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8세기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동양의 경우 국왕이 직접 전쟁에 뛰어든 역사적 장면이 얼마나 될까. 당 태종 이세민이 30만 대군과 함께 직접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고구려의 분전에 패퇴한 역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침략자 이세민은 양만춘이 쏜 화살에 눈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웅장'하게 하지만, 중국 역사책들은 사망 원인을 이질이나 종기로 숨긴다. 이후 황제가 전쟁에 참여한 역사는 명나라의 영락제가 군졸과 함께 고비사막을 넘은 정도이다. 가장 최근에는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6·25 전쟁에 참전한 사례가 있다. 그는 막사에서 김일성이 하사한 달걀로 볶음밥을 해 먹다 폭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비슷한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동양식 왕조에서는 농민이 경제와 국방까지 책임지는 병농일치의 부병제가 근간이기 때문에 군사적 의무감이 별로 없는 동양의 귀족에게 서양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생길 리 없다.

민주주의와 상비군 제도가 보편화된 현재,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군사적 의미가 퇴색하여 도덕적 의무만 남았다. 목숨을 담보할 필요가 없는 현대사회의 '도덕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유교문화권과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공자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개념은 어떤 계층의 누구라도 자신의 도덕적 의무에 충실할 것을 가르쳤고, 유교문화의 세례를 받은 우리 사회는 계층과 상관없이 이러한 도덕적 의무에 매우 민감하다.

IMF 금 모으기와 코로나 위기 시 국민의 자발적 희생,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주고 있는 높은 인도주의적 관심 등은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공동체에 헌신하려는 고귀한 도덕적 의무감의 표현이다. 국민이 만들어 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유교버전'이라고나 할까. 향후 한국식으로 정립된 K-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동양문화권을 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발상지에 역수출되는 그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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