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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또 다른 100년을 향한 비전”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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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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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 특집기획국장

   
 

LA폭동이 발생한지도 벌써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120년에 가까운 미주한인 이민사에 가장 큰 이정표적인 사건은 단연코 1992년 4월29일 LA폭동을 꼽는데 주저할 한인은 없을 것이다. 한인들이 미국에 이민와서 수십년간 피땀흘려 모은 생활기반이 하루아침에 폭도들의 약탈과 방화로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LA폭동으로 2,300개 한인업소가 약탈과 방화로 불탔으며 사망 1명, 부상 46명, 피해액은 무려 4억달러로 전체 피해의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1992년 4월30일, 폭도들의 방화로 불타고 있는 한인타운을 지키러 나갔다가 당시 산타모니카 칼리지에 재학중인 이재성군이 갑작스런 총격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 한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1990년대 초반 빈곤과 소외로 쌓일대로 쌓인 흑인사회의 불만이 두순자 사건과 미 주류언론의 한흑갈등 편파 보도로 엉뚱하게 한인사회로 그 불똥이 튀었다. 폭동 당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줄 정치인이 없었던 한인사회는 정치력 부재의 결과를 뼈저리게 체험해야했다.

그러나 폭동 당시 LA 한인사회가 10만 평화대행진을 통해 폭력에 평화로 맞선 성숙한 커뮤니티임을 입증했고 폭동을 전화위복으로 정치력 신장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폭동을 통해 거둔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폭동이 발생했던 1992년 11월 김창준씨가 한인사회 최초로 미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정호영 가든그로브 시의원이 탄생하는 등 한인사회는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한국일보는 지난 2011년부터 주류사회 정치 지도자와 차세대 리더 등이 대거 한 자리에 모이는 한인사회 최대 규모의 정치행사인 ‘미주한인 정치컨퍼런스 및 차세대 리더십 포럼’을 지속적으로 개최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미주한인사회는 미셸 박 스틸, 영 김, 앤디 김, 메릴린 스트릭랜드 등 4명의 연방 하원 의원을 배출할 정도로 걸출한 정치적 성장을 일궈냈다. 존 이 LA 시의원을 비롯한 각 로컬정부의 정치인은 미 전역에 수십여명에 달한다.

현재 4.29 30주년을 맞아 한인사회 곳곳에서 폭동의 교훈과 의미를 되새기는 세미나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4.29를 피해와 고통의 역사로 회고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극복과 성장의 역사로 승화시켜 자기성찰의 계기를 삼을 필요가 있다.

폭동 피해자는 물론 한인사회에 대한 정부차원의 사과와 보상 등 폭동으로 우리가 잃은 것을 정당하게 주장해서 얻어내야 하는 등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험하다. 폭동이 발생했던 해에 한인사회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소송 행정명령서를 2,000명이 5,000건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일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4.29를 겪은 한인들은 아직도 그날의 억울함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폭동으로 목숨을 잃고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폭동피해자들은 물론 한인사회 전체가 폭동의 피해자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폭동 당시에 한인들이 받은 정신적 피해와 경찰이 지켜주지 않고 방치한 것에 대한 보상과 공식 사과를 받아내 사건의 재발을 막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 지난 30년간 3,000여명의 한인 폭동피해자들이 제대로 복구를 했는지 현황을 파악하는 일부터 먼저 시작해야한다. 또한 소송을 하기위해서는 공소시효가 있는 지도 살펴볼 일이다.

법조계에서는 1921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발생한 백인폭도들의 흑인 학살 케이스의 사례를 들어 폭동당시 한인들의 피해도 보상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건은 1997년 주정부가 진상위원회를 만들면서 미 전역에 알려졌고 주정부가 현재 생존자 및 후손들을 대상으로 보상문제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신장된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이용해 시 정부차원의 사과를 받는 일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폭동 당시 경찰 치안의 부재로 속수무책으로 폭도들에 의해 한인업체들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과 법조계, 한인 리더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일종의 특별위원회를 결성해 미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야 후손들에게도 떳떳할 것이다.

그것은 세금을 내는 미국 시민으로의 권리이자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기도 하다. 1세들에게 조차 LA 폭동이 서서히 잊혀지는 역사가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이다. 또한 이민 사회 각 가정에서 폭동이 왜 일어났으며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소상하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또한 역사를 잊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해서 당하는 형벌에 처해짐을 지나 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LA폭동의 의미를 되새겨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깨닫고 미주한인사회가 또 다른 100년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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