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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우크라이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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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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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세계는 지금 불안과 공포 그리고 무력감에 젖어 있다. 2년 넘게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근 600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2월24일 새벽에 전격적으로 감행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지구촌의 운명이 앞으로 어디로 끌려 갈지 속단할 수 없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우선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미시세계와의 힘든 싸움이지만, 그래도 과학의 힘을 빌린 예방과 치료를 통해서 점차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하면 전쟁을 억제하는 평화체제의 구축은 인간이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신념이 일찍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끝이지 않고 있으며, 유럽 대륙에서 다시 일어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경과 영토를 가리지 않고 동시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재앙이지만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개별 국가의 역사나 영토가 지닌 의미가 점차 사라지면서 결국 하나가 된 ‘세계사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만든다.

코로나 위기는 인간이 자연세계에 대해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인간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어떤 결손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평화는 이성의 최고 작품이다’라는 칸트의 도덕적 요청도 기실 그렇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긴급히 보도하는 새벽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역사와 지리적 조건, 그리고 복잡한 민족문제 때문이라도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의 길을 왜 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핀란드가 1948년부터 걸었던 길이다. 이것이 물론 소련(러시아)에 대해 예속적이라는, 일종의 부정적 의미도 내포하지만 현실주의적인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열어 준 후, 특히 2019년 2월 헌법 개정을 통해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목표로 삼은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는 줄곧 있었다.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래 나토 가맹국의 숫자가 16개국에서 30개국으로 늘어난 상황이어서 러시아가 안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틀 바꿀 ‘시대의 전환점’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자유민주주의 완전 승리의 기점이라고 해석했던 때로부터 불과 30여년 만에 지구촌은 이제 전망하기 어려운 새로운 냉전의 블랙홀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번 전쟁이 과연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지, 친러시아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들어설지, 우크라이나의 중립을 보장하는 평화조약의 체결은 가능할지, 바르샤바조약 가맹국이었으나 지금은 나토 가맹국인 폴란드와 발틱 3국을 비롯한 다른 동유럽 국가까지 이번 사태가 번질 것인지, 정말 핵전쟁으로까지 갈 것인지, 어느 것도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은 즉각 경제 제재를 중심으로 한 강력 대응으로 러시아를 응징하겠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푸틴은 이를 계산에 넣지 않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심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동기는 무엇인가.

사라진 ‘소비에트 제국’에 대한 짙은 향수와 더불어 현실감의 결손이 그로 하여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했다거나,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조지아(옛 그루지야) 공화국에서 일어난 2003년 11월 ‘장미혁명’과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오렌지 혁명’이 몰고 온 민주화가 그의 권력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강박감이 함께 작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 푸틴의 정신세계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는 연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사상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반 일린(1893~1934), 레프 그미료프(1912~1995), 알렉산드르 두긴(1962~) 등이다.

이들이 표명하는 사상의 공통적 핵심은 러시아는 유럽이 아닌, ‘유라시아’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과 이의 부르주아가 걷는 쇠락과 타락의 길 대신에 광활한 대지의 기를 받은 건강한 러시아 영혼을 의미한다. 일린은 이를 ‘정신적인 충격’, 그미료프는 ‘내적인 에너지’(파쇼나로스트)라고 표현했다.

이런 정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의 하나로 나는 다재다능했던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1833~1887)의 교향시곡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떠올린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키스탄을 러시아 제국에 병합시켰던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을 맞아 작곡,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광활한 초원에서 러시아 병사와 카라반을 이끄는 동방의 현자(賢者)의 만남을 그렸다.

이런 문화주의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두긴은 지정학적 의미에서 ‘새로운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EU에 대응해서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2015년 1월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은 이런 새로운 유라시아주의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치 엘리트는 물론 많은 러시아인은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걷잡을 수 없는 국내 정치의 혼란, 이와 함께 온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 추락을 자신의 패배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러시아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강력한 국가뿐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흔치 않은 기회

동서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러시아에도 새로운 출발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많은 러시아인은 서방 측이 그들의 일방적인 승리를 자축하면서 미국의 주도하에 나토의 동방 확장에나 열심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2014년 4월 푸틴이 크림반도를 전광석화처럼 합병하자 그들은 전폭적으로 이를 지지했다.

그사이에 미국을 정점으로 한 헤게모니 체제는 금융위기를 맞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거듭된 패착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중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은 중국과 경쟁,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대만문제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단순하게 등치시켜 볼 수는 없지만, 중국은 이번 사태를 하나의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는 게 분명하다.

1996년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상하이협력기구’가 발족한 이래 두 나라 사이에 경제는 물론 군사 부문에서도 협력이 꾸준히 확대되었다. 지금 러시아에 중국만큼 강력한 지원 세력은 없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저울질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자국의 지원 정도와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러시아에 대한 서방 측 경제 제재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로 조성된 유럽 내의 반(反)푸틴 정서를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고 있다. 교전국에는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금기를 깬 데 이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주요 금융기관을 퇴출하는 데 독일이 동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유럽의 안보 분위기가 급하게 변하고 있다. 독일 총리 숄츠는 ‘시대의 전환점’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냉전기의 최초의 열전이었고 여전히 평화의 길이 먼 한반도이기에 새로운 냉전의 최초의 열전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계속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오랜 싸움에 모두 지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우크라이나 사태가 예고하는 국제정치적 틀의 변화를 한반도도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냉전의 시발점에서 치르는 이번 대선의 무게는 그래서 절대 가볍지 않다. 비록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자조적인 평까지 나돌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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