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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선정, 2021년 세계한인사회10대 뉴스
강혜민 기자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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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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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대 총선 재외국민 선거인 수 불과 8만4690명, 20대 대비 45% 감소

총선과 대선 재외선거 투표율을 분석한 결과, 2016년 20대 총선 대비 지난해 21대 총선 선거인수가 15만4217명에서 8만4690명으로 45% 감소하고 투표자 수도 6만 3797명에서 4만 858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에서 받은 ‘재외선거 투표율 현황’에 따르면, 2017년 대선 재외국민 투표율은 75.3%에 달했으나, 2020년 21대 총선 재외국민 투표율은 48.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 19로 인해 55개국가 91개 재외공관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중지된 영향으로 선거인 수가 급감한 것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22만 2389명의 선거인 수 중 15만 8225명이 투표해 71.1%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29만 4633명 선거인수 중 22만 1981명이 투표해 75.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총선의 경우 2016년에는 15만 4217명 선거인 수 중 6만 3797명이 투표했고, 2020년에는 8만 4690명의 선거인 수 중 4만 858명이 투표해 각각 41.4%, 48.2%의 투표율을 보여 대선 보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다.

2. 文 대통령 “홍범도 장군의 귀환, 국민에 위기 극복의 희망”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귀환은 어려운 시기,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위기극복에 함께하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 추모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장군이 고향 흙에 흘린 눈물이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뜨거운 나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이끌었던 독립전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이 오늘 마침내 고국산천에 몸을 누이신다”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1주년, 장군이 이역만리에서 세상을 떠나신 지 78년, 참으로 긴 세월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이어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위해 적극 협력해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 동포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장군을 이곳에 모시며 선열들이 꿈꾸던 대한민국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선조들의 고난을 뒤돌아보며 보란 듯이 잘사는 나라,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우리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밝히고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조선장학회, ‘한국인·조선인 학생의 차별 경험에 관한 의식조사’ 실시

   
 

일본 정부가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대책법을 제정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재일동포 청년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일조선장학회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고등학교·대학(원)에 재학 중인 재일동포 장학생 1천497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조선인 학생의 차별 경험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70%가 인터넷이나 거리에서 우익의 헤이트 스피치에 당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0%가 주로 차별 언행을 들었고 40%는 공적 기관이나 주택 임차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온라인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접한 후 인터넷 사이트 이용을 중단한 경우가 30%에 이르며 대부분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고 답했다.

‘한국식 이름을 사용할 때’가 17.8%, ‘한국·일본 이름 양쪽을 모두 사용할 때’가 15%, ‘일본식 이름(통명·通名)을 사용할 때’가 7.3%인 것으로 드러나 민족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차별을 더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당수 재일동포는 본명(本名·한국 이름)과 통명을 둘 다 갖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름을 달리 사용하고 있다.

장학회 관계자는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신정주자는 대부분 본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에서 살아온 구정주자나 귀화자 등은 대부분 통명을 써온 게 현실”이라며 “일본 사회의 재일동포 차별 부산물 중 하나가 통명”이라고 소개했다.

4. 北 김정은, 재일동포 자녀들 교육비 등 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탄생 109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자녀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교육을 위해 2억1,906만엔(약 22억 5,800만원)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총련에 보냈다고 북 <노동신문>이 4월 14일 보도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금까지 167차례에 걸쳐 488억 7,939만 390엔(약 5,038억원)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957년 국가예산 항목으로 ‘재일동포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새로운 예산항목을 만들어 그해 4월 최초로 총련에 1억2,109만8,086엔을 교육비로 보냈으며, 이후 매년 ‘태양절’ 등 주요 국가 명절을 기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5. 朝總聯 제2의 고난의 행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 2021년판 '내외정세의 회고와 전망' 보고서 표지 [ⓒ 일본 공안조사청]

매년 연초에 발행하는 일본 공안조사청의 ‘내외정세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국가간 관계와 정세뿐만이 아닌 일본 국내에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이비 종교단체, 좌익세력, 우익세력, 조총련 등 다양한 위험 요소의 현황을 분석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중국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1월 말 북중 간 국경을 통한 주민 왕래와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고, 중국·러시아를 오가는 국제열차·항공기 운항 또한 중단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대외 교역량도 급감하면서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고 공안청은 분석한다.

보고서의 조총련 관련 부분은 (1)코로나로 인한 조직과 활동의 정체, (2)조직 결집을 위한 노력, (3)제1부의장 직 신설, (4)코로나 상황에서의 조직과 활동의 회복을 위한 노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 在日 민주화의 거성 정경모 선생 타계

   
▲ 2020년 7월의 정경모씨 [ⓒ 유족제공]

고인은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당시 일본에서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김지하 석방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1989년 고 문익환(文益煥·1918∼1994) 목사와 함께 방북했던 재일 문필가 정경모(鄭敬謨)씨가 2월 16일 새벽 일본 요코하마(橫浜)시 고호쿠(港北)구 자택에서 작고했다.

특히 일본의 보수언론들과 그의 논쟁은 김대중 사건의 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맥아더 사령부에서 급조된 3.8선의 유래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1983년 여운형·김구·장준하 3명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의 픽션집 ‘운상경륜문답(雲上經綸問答)’을 펴냈는데, 이 책이 한국에서 '찢겨진 산하'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거름, 1992)돼 대학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경모씨는 미국 유학시절 프란체스카 여사의 특별요청으로 GHQ 사령부의 통역으로 소환되어 당시 주일미군 사령부 (맥아더 원수) 진영의 대한정책, 남북관계 특히 정전 회담시 한국측 대표단의 일화, 북한측 대표단의 활약상을 소상히 그려냈고 주한미사령관 하지중장의 대일편향 활동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는가 하면 GHQ에 한국의 유능한 청년 학생이 30여명 근무했다면서 이는 한반도 유사시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맥아더 사령부의 계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989년에는 문 목사와 함께 방북해 북한의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4·2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기를 거부해 귀국하지 못한 채 일본에서 숨을 거뒀다. 아들 정씨는 “작년에 아버지의 귀국 직전까지 협의가 진전됐지만, 코로나19 탓에 결국 돌아갈 수 없었다”며 “마지막까지 ‘미국이 멋대로 그어놓은 38선을 없애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셨다”고 말했다.

2010년 신문 연재 글을 모은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 2010)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재일 한민통 인사들과 김대중씨와의 관계를 소상히 그려 내기도 했는데 이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축하연이 거행되는 자리에 한민통 인사들이 참여할 수 없었던 일화를 남겼다.

7. 재외동포재단 '찾동' 프로그램 활성화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김성곤)은 동포사회의 주요현안 및 애로사항 청취를 위해 ‘찾동(찾아가는 동포재단)’이라는 비대면 화상접촉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3월15일 아프리카·중동지역 한인회장들과 처음으로 ‘찾동’ 간담회를 갖고, 거주국 코로나19 돕기 및 모국 지원 활동에 대해 협의하였고, 재외동포 백신접종 기회 등 요구사항을 청취하였다.

지난 6년 간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에 대표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미국 한인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 10대 지역 한인회장들과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화상으로 만나, 미래지향적인 미국 동포사회 대표기구 개선 방안에 대해 실효성 있는 협의를 하였으며, 금년 10월 발족 예정인 ‘세계한인회총연합회’ 추진위원회에 참석할 미국측 옵저버(찰스윤 뉴욕한인회장)를 선임하기도 하였다.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재외동포사회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생생한 동포사회의 목소리를 청취하여 재단사업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찾아가는 동포재단’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전 세계 우리 동포 단체와의 소통을 활성화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8. 제20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 개최

   
▲  제20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서울 중앙청사 별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주재로 개최되었다. [ⓒ 사진 외교부]

정부는 11월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정의용 외교부장관 주재로 「제20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개최하여, ▲‘정부 재외동포정책 추진성과 및 향후과제’ ▲‘국내체류동포 지원현황 및 향후계획’ ▲‘사할린동포법 시행현황 및 향후계획’ 안건에 대해 논의했다.

재외동포정책위원회는 대통령훈령(제228호)에 의거하여 ‘96년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번 제20차 회의는 ’21.9월 위원회가 외교부장관 소속으로 변경된 이후 처음 개최되는 회의이다.

정 장관은 정부가 750만 재외동포 지원에 중요한 우선순위를 두어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하면서,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동포들이 직면한 다양한 애로 사항을 해소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였고, 사할린동포, 고려인 동포 등 역사적 특수성을 가진 동포와 소외된 동포에 대한 지원을 체계화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외동포기본법 제정, 국내체류동포 지원 문제 등 관계 부처간 논의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협의를 진행해나가고, 미래 동포사회의 주역인 차세대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이들이 모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함양하는데 정책의 중점을 둘 것을 당부했다.

정부는 제20대 대통령 재외선거(2022.2.23.-28)가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공관별 방역대책 마련, 추가 투표소 운영 등을 통해 편리하고 안전한 투표환경을 조성하고, 투표율 제고를 위한 홍보 활동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9. 외교부 ‘사할린동포 기념식’ 개최…“334명 귀국 환영”

   
▲ 김부겸 총리가 12월 23일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사할린 동포법 제정 및 영주귀국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총리실]

김부겸 총리는 12월 23일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사할린 동포법 제정 및 영주귀국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한일 정부는 사할린 동포를 지원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사할린 동포 본인과 배우자, 장애 자녀가 지원 대상이었지만, 법 시행을 통해 직계비속 1인과 그 배우자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김 총리는 “한일 양국의 인도적 단체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사할린 동포 지원에 협력해왔다”며 “특히 대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가 1989년 공동사업체를 세워 다양한 사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영주 귀국을 원하는 사할린 동포를 순차적으로 모두 고국으로 모시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여러분 가슴에 새겨진 역사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온 마음을 다해 국가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할린 동포를 포함해 750만 재외 동포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시는 뜨거운 열정을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면서 “그 조국애와 민족애에 보답하도록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덧붙였다.

10. 쿠바 이민 100주년 '쿠바의 한인들' 번역 출간

   
 

올해는 한인들이 쿠바에 정착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조갑동 전 콜롬비아 대사가 라울 루이스와 마르타 림 김 부부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계기로 쓴 <쿠바의 한인들>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간했다.

쿠바는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정식 국명은 쿠바 공화국(Republic of Cuba)이다. 쿠바는 한국의 몇 안 되는 미수교 국가다. <쿠바의 한인들>은 어려운 여건을 뚫고 긴 세월을 버텨온 한인들의 발자국이 쿠바의 산과 들녘에서 숨쉬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쿠바 이민 역사가 우리민족 수난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쿠바 한인들은 구한말인 1905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떠나 혹독한 노동으로 노예 취급을 받았던 1천여명의 한인들 중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밭 취업을 위해 재이주했던 노동자 300여명의 후손들이다. 현재는 거의 대부분 쿠바인과 결혼하고 현지에 동화돼 모국어을 잊은 채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1921년 3월 25일, 멕시코에서 300명의 한인들이 배를 타고 쿠바 마나티항에 도착했다. 이미 16년 전인 1905년 제물포항에서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향해 고국을 떠난 1,033명의 ‘애니깽 한인’들 중의 일부가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쿠바로 재이민을 간 것이었다. 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태어났으나 그 중에는 멕시코인들의 자손이나 혼혈아도 있었다. 당시 한인들이 타고간 타마울리파스호는 증기선이었고 이들은 멕시코 비자로 쿠바 항구에 첫 발을 디뎠다. 이것이 쿠바 한인의 시초다.

이들은 멕시코의 열악한 에네켄 농장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쿠바 수탕수수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기대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인들이 도착할 무렵, 1차 세계대전 후 설탕의 수출가격이 폭락해 쿠바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시기였다. 에네켄 선인장의 억센 가시를 피해 떠났던 그들은 또다시 쿠바 수도인 아바나 부근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겪어야 할 갈등은 살아남기 위한 적응과 무의식중에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이었다.

더욱이 1910년부터 일제 강점기를 맞으며 우러난 모국 독립에 대한 열정은 쿠바에 흩어져 살던 한인들을 한 데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1940년 쿠바 헌법은 한인들과 특히 쿠바에서 태어난 한인들의 현지 적응화 과정에 속도를 가하게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혼혈로 부득이 한민족의 피는 흐려지고 고국을 생각하는 마음도 엷어졌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피가 살아 흐른다는 자부심만은 유지하고 있다.

1세대 이민자들이 쿠바에 첫 발을 디딘 후 5세대에 이르렀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쿠바에는 한인들의 발자국은 지금도 곳곳에 숨어 있다. 당시 300명의 한인들은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저자인 마르타 림 김은 쿠바 마탄사스에서 1938년 한인 부모에서 태어났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인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와 대학에서 33년간 교편을 잡았다. 저자의 아버지 고 임천택씨는 대한인국민회의 쿠바지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독립자금을 모아 백범 김구 선생 등에게 전달했으며 쿠바 한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 이를 극복해 나간 모습들을 생생히 묘사한 <쿠바이민사>를 집필했다.

자칫 묻혀버릴 뻔한 쿠바의 한인 이민사가 복원된 것은 이민 1세 임천택 부녀의 2대에 걸친 노고 덕분이었다. 그가 남긴 32쪽짜리 ‘쿠바 이민사’는 초기 한인사회의 유일한 기록이었다. 미완성의 쿠바 이민사를 완성한 사람은 둘째딸 마르타 림 김이다. 1997년 광복절에 부친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편인 라울 R 루이스와 함께 2000년 1월 출간한 ‘쿠바의 한인들(Coreanos en Cuba.)’을 공동집필했다. 12년 동안의 현지 조사 및 자료정리와 3년 집필의 결실이었다.

2000년 쿠바 문화부로부터 최고 학술출판상을 받은 이 책은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올해 초 20년 만에 한·중남미협회와 외교부으 지원을 받아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책을 번역한 조갑동 전 콜롬비아 대사(85)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1968년에는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저널리즘 학교를 졸업하고 마드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 당시 외무부에 들어가 주 볼리비아 대사, 주 바르셀로나 총영사, 주 콜롬비아 대사직을 역임했다. 한서대학교 교수와 한-쿠바 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중남미협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활발한 번역활동을 하고 있다. 윤흥길의 <장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이문열의 <그 해 겨울>, 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 쿠바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호세 마르티의 <나는 태양에서 와서 태양으로 간다>, 니카라과의 시인인 루벤 다리이의 <푸름>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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