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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선생 기념 추모문집 '타올라라 타올라라 내 별이여'한러수교 막전 막후 맹활약
박상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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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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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문집 '타올라라 타올라라 내 별이여' 책표지. [사진제공 김원일]

지난 12월 10일 유서깊은 모스크바 한 도서관에서 구소련 문화부 고위 관료이자 문학가, 번역가 그리고 성악가이기도 했던 리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선생 기념하는 추모문집 '타올로라 타올라라 내 별이여' 발간기념식이 진행됐다.

행사 현장엔 모스크바 코로나 상황으로 현장엔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고,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중계되었다.

이번 행사는 러시아 민족청, 전 러시아고려인연합회, 고려인신문, 모스크바프레스 등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선생의 별세 25주년을 맞아 진행된 추모집 발간기념식엔 선생의 부인과 동생등 가족들과 여러 지인들이 참석했다. 친지들이 함께 선생을 추모하며 추모문집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행사를 담당한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은 선생과 함께 근무했던 구소련 문화부시절을 회고하며 "선생은 매우 신실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며 "비교적 짦은 삶을 살았지만 다방면에 거쳐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추억했다.

   
▲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선생의 러시아인 부인은 추모사에서 "자신이 사랑에 빠져 선생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한국문화와 정서를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었다"며 "내 선택이 옳았음을 나중에 깨달았다"며 선생에 대한 애정과 행복했던 결혼 생활을 회고했다.

   
▲ 리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선생 부인이 부인의 추모사를 하고 있다.

선생은 1935년 생으로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후에 유명한 그네신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기도 했다. 다른 고려인동포들과는 다르게 선생은 부친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있었다. 선생은 한국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선생은 뛰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1990년 한러수교 당시에 소련 외무부에 파견 근무하며 한국과 소련의 수교 막전 막후에 매우 큰 역할을 수행했다. 한소 수교 당시에 한국쪽 고위인사들과 친분을 많이 쌓았다.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면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던 중 1995년 갑작스런 지병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61세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별세는 한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큰 손실로 한국과 러시아의 많은 지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행사에 참석한 김원일 박사(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는 "한국과 러시아가 현재와 같이 발전된 관계를 이루기까지 리 겐나디 선생과 같은 많은 고려인동포분들의 크고 작은 기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고려인동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펼 수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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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선생 한국방문 당시 한국 외무공무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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